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3년 반 만에 성사된 것은 격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각국이 일단 소통 체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안보 협력 필요성 이면에 갈등 요소도 산적해 있는 만큼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탐색적 대화와 조율의 장(場) 기능도 일정 부분 회복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이번 정상회의가 현안은 덮어둔 채 대외적으로 3국 협력체계 재가동을 선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된 데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미·중 갈등과 역사 문제가 잠복된 가운데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니 현안 해법을 도출하지 못한 채 한계만 절감했다는 것이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2012년 9월 일본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국유화하면서 극심해진 중·일 갈등 탓에 전면 중단됐다. 이에 따라 이른바 ‘3각 경제·안보 공조’도 공전(空轉)을 거듭해 왔다. 각국 간 역사·영토 분쟁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갈수록 이견만 부각됐다. 그 사이 미·중 갈등까지 격화되면서 각국은 치열한 수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자 3국의 경제·정치적 입장이 반목하는 이른바 ‘아시안 패러독스’가 극심해졌다.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미·일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우리나라의 처지가 단적인 예다. 출구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결국 미·중과 끈끈한 우호관계를 구축한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 이번 정상회의를 성사시켰다. 극심한 지정학적 갈등을 뒤로하고, 힘을 합할 건 합하자는 데 3국이 뜻을 모은 것이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는 경제·사회 분야는 물론 인적·문화 교류와 지속가능한 개발 문제 등 실질적인 상호이익을 도출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또 미·중, 한·중,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북핵 불용(不容)의사를 재천명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갈등 현안은 잠시 뒤로 미루고 3국 협의 채널 강화에 따른 전략적 협력 틀을 다지는 데 힘을 쏟은 것이다.
하지만 모처럼 가동된 3각 공조에도 불구하고 현안을 외면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치열한 지정학적 갈등 요소에 대해 이견을 좁히고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허비된 측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가에서는 장기화된 정치·군사적 대립에 대한 피로감도 새어 나오고 있다. 더 이상 해법 모색이 불가능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갈수록 견고해지는 동북아의 불안정성이 일상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진다.
이처럼 3국 정상회의가 실리적 측면에만 머문 것은 동북아 외교지형에 따른 근본적 한계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으로선 한·일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한국은 북한 문제와 TPP 2기 가입 문제를 두고 각각 중국과 일본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미국과의 협조를 강화하는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고, 한국과 과거사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미국은 한·미·일 공조를 되살려 중국을 압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런 중층적인 이해 구도 속에서 섣불리 양자 간 현안을 논의하기도 어렵고, 논의한다 해도 해법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애초에는 전략적 필요성에 의해 탄생한 3국 정상회의가 결국 실리적 측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강준구 기자
[한·중·일 정상회의] 실질적 ‘상호 이익’에 초점… ‘갈등 요소’ 물밑 잠복
입력 2015-11-01 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