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이명찬] 위안부문제와 안보를 투 트랙으로

입력 2015-11-01 18:28

어제는 한·중·일 정상회담이, 오늘은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 3년 반 이상 중단된 기간 동안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3국 정상회담의 재개를 위한 한국의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순조롭게 회담이 열리고 차분한 가운데 의견을 교환하고 대화 기조를 유지한다면 이번 회담은 성공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어렵게 성사된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 여론 모두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전된 움직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지 말고 무난하게 치르고 미국을 안심시킨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애초에 기대할 것 없는 한·일 정상회담이 왜 필요한가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한국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로 제시해 왔던 위안부 문제에서의 진전된 언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을 재개한 것에 대해 이럴 거였으면 왜 지금까지 거부했나라는 비판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미국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성사된 것임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인권문제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도덕적 우위에 있는 이슈다. 한국 정부가 최근에 밝힌 과거사 문제와 경제 안보를 분리해서 다루는 투 트랙 외교를 추진하겠다는 의사 표명이 있기 전에는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의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양상이었다. 이 문제로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장기간 계속되자 불편해 하는 미국 정부를 앞세워 아베정부는 중국과 미국의 세력 전이로 동아시아 안보 상황이 급격히 불안정해지는 현상을 교묘히 이용해 오히려 한국을 난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일본은 한국이 ‘중국으로 경사’하고 있다는 주장을 워싱턴에서 꾸준히 제기해 과거사 문제를 동아시아 안보문제로 치환,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공동 피해국인 한·중 양국이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에 공조해 일본을 압박하는 형태로 추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으나,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갈등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3국 공조가 간절한 가운데 아베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요청한 집단적자위권의 행사를 가능하게 하고 안보법제를 정비해 확실히 미국 편에 섰음을 미 정부에 과시하면서, 역사문제에서 중국과 공동 보조를 맞추려는 한국에 대해 미국이 불편해 하도록 한국의 ‘중국경사론’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도덕적 우위에 있던 위안부 문제 역시 중국과 보조를 맞춰 일본을 압박하는 양상으로 진전되면서 이 문제가 동아시아 안보문제에 묻히고 한·미·일 3국 관계는 복잡한 상황으로 변질돼버렸다.

과거사 문제와 경제·안보를 분리해서 다루는 투 트랙 외교를 진작부터 추진해 왔더라면 일본의 ‘중국경사론’ 주장은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도덕적 우위에 있는 위안부 문제에서 아베정부가 지금과 같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중국과 거리를 두고 안보와 분리·대응할 때 오히려 미국의 지원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이슈다.

이번 정상회담 개최로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과도한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고, ‘중국경사론’을 불식시켜 미국의 한국을 향한 불편한 눈길도 돌릴 수 있게 됐다. ‘중국경사론’은 한·중·일 3국 협력을 잘 추진해 이 주장이 힘을 얻는 토양을 원천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2대 1’(한국·중국 대 일본) 구도가 형성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나아가 3국 정상회의 메커니즘을 정례화해 신뢰를 회복하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높은 수준으로 추진하는 것이 동아시아의 장기적인 안정과 번영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명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