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⑮·끝) 아버지의 십자가 사랑 전한 독일 뢰트거 목사

입력 2015-11-01 21:11
최근 경기도 김포 고촌교회에서 만난 마틴 뢰트거 목사가 아버지의 유품인 십자가 목걸이를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동·서독을 갈랐던 철조망으로 만든 십자가. 이 십자가는 고촌교회 ‘크로스갤러리’에 전시돼 있다.

벽안의 목사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배낭에서 액자 하나를 꺼냈다. 액자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촬영한 사진이 담겨 있었다. 목걸이는 한눈에 봐도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십자가에 박힌 보석만큼은 오묘하면서도 영롱한 빛깔을 띠었다. 그는 “이 목걸이는 우리 집안의 가보”라고 소개했다.

액자의 주인은 독일 보훔시(市)에서 목회를 하는 마틴 뢰트거(53) 목사다. 최근 그를 만난 곳은 경기도 김포 고촌교회에 있는 십자가 전시장 ‘크로스갤러리’. 십자가 연구가 송병구(54·의왕 색동교회) 목사가 수집한 십자가 500여점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뢰트거 목사는 크로스갤러리를 둘러보다가 가보라고 소개한 십자가에 담긴 사연을 들려줬다. 액자 속 십자가 목걸이는 2004년 2월 뇌졸중으로 별세한 뢰트거 목사의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었다.

◇아버지 살린 십자가=뢰트거 목사의 사연을 처음 접한 건 지난해 7월 송 목사를 통해서였다(국민일보 2014년 7월 7일자 29면 참조). 송 목사는 당시 뢰트거 목사로부터 십자가 8점을 기증받은 소식을 전했다. 액자 속 십자가 목걸이가 그러하듯 뢰트거 목사 아버지의 유품들이었다. “뢰트거 목사의 아버지는 생전에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을 살린 건 십자가였다고.”

하지만 송 목사로부터 자세한 사연을 들을 수는 없었다. 궁금증은 뢰트거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풀렸다. 그의 아버지는 1943년 군에 입대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겨우 열일곱 살. 10대 소년이 맞닥뜨린 전장은 참혹했고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뢰트거 목사의 아버지는 헝가리의 한 시골 동네를 지나다 십자가 목걸이를 주웠다. 액자 속 사진에 담긴 그 목걸이다. 그는 전쟁 기간 내내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그는 소련군에 붙잡혀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그런데 소련군은 그를 처형하지 않았다. 십자가 목걸이를 한 청소년이 나치에 충성할 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버지는 종전 이후 신실한 삶을 사셨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십자가도 수집하셨습니다. 지난해 송 목사님께 전달한 십자가들이죠. 아버지는 십자가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자유를 얻었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저희 아버지가 그랬듯 십자가에 담긴 의미를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뢰트거 목사는 크로스갤러리를 방문한 이날 십자가 목걸이 사진이 담긴 액자를 기증했다. 목걸이 실물이 아닌 사진을 기증한 이유는 그만큼 목걸이가 그에겐 소중하기 때문이다. “2013년에 내한했을 때 크로스갤러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십자가들이 있을 곳은 여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송 목사님께 지난해 십자가 8점을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목걸이는 기증할 수 없더군요. 제 아들(23)도 할아버지의 목걸이를 진심으로 아낍니다.”

◇“십자가 통해 신앙 되새겨요”=뢰트거 목사의 한국 방문에는 독일 목회자와 평신도 11명이 동행했다. 이들은 보훔에서 신앙 공부를 하는 공동체 ‘크리스천 아카데미 보훔’ 회원들이었다. 지난해 1월부터 격주로 화요일 저녁마다 만나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뉴스를 보는데 북한 관련 보도가 나왔어요.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남한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북한의 도발적 발언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 있는 한인들 모습을 보니 너무 평화로운 거예요.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궁금해지더군요. 그때부터 지인들과 한국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방한은 회원들이 한국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해서 온 거고요(웃음).”

십자가 사랑이 지극했던 아버지 때문인지 뢰트거 목사 역시 십자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는 “십자가에는 많은 의미가 담겼지만 내게 가장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며 “십자가를 통해 항상 나의 신앙을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크로스갤러리를 관람하던 그의 발걸음이 한 십자가 앞에서 멈췄다. 독일이 분단국가일 때 동·서독 경계선에 세워진 철조망으로 만든 십자가였다. 그는 이 십자가 앞에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통일을 경험한 독일의 목회자로서 분단 70년을 맞은 한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통일은 독일 국민에게 갑작스러우면서도 감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남북한이 걸어갈 통일의 길은 멀고 험할 것입니다. 그런 길을 걸어가려면 항상 통일을 준비하는 열망이 국민의 가슴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이런 열망을 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김포=글·사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