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가을은 가을인데, 춥다

입력 2015-11-01 18:25

최악의 가뭄이 계속되어도, 때아닌 미세먼지가 습격해도, 갑자기 초겨울 날씨가 몸을 움츠리게 만들어도 가을은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만물은 색깔을 입어간다. 은행잎은 노랗게 떨어지고 단풍잎은 빨갛게 쌓여간다. 공기는 차갑지만 한낮의 볕은 따갑고 햇빛의 색깔조차 가을빛이다. 짧아진 가을이지만 그 양광의 아름다움을 맛보기엔 충분하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마음은 왜 추워지는가?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을 잔인하다고 느끼는 봄과는 다른 스산함이 오간다. 낙엽이 떨어져서인가, 올해가 다 가는 시간의 빠름을 느끼기 때문인가, 햇볕을 덜 받기 때문인가, 호르몬이 달라지기 때문인가? 이 모든 것들이 작용하겠지만 역시 사람 일들 때문이다.

마음이 춥다. 이 추운 마음을 녹이기가 너무 어렵다. 차라리 겨울이라면 몸이 추워서라고 하겠건만, 그것도 아니다. 왜 사람들을 나누려 드는가? 왜 내 편 네 편으로 싸우게 만드는가? 왜 비방하는가? 왜 광기 어린 숭배를 강요하는가? 왜 말도 안 되는 말이 세상에 난무하게 만드는가? 왜 상식을 무너뜨리는가? 왜 생각의 자유를 제한하려 드는가? 왜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의지를 꺾는가?

젊은이들이 ‘헬 조선’이란 말을 쓰는 게 안쓰럽다. ‘만사 평화로운 천국보다 역동적인 지옥이 더 재미있다’라는 말로 우리나라를 표현했던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지옥 중에 가장 무서운 지옥은 생지옥인데, 어찌 살아있음을 생지옥으로 표현하게 되었더란 말인가?

인간의 능력 중 가장 강력한 것이 희망의 능력이다. 생각함, 자유함, 상상함의 능력을 압축한 것이 희망의 능력이다. 현재의 생존만을 쫓는 동물, 과거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미래를 그리지 못하는 동물과는 다른, 인간만의 능력이다. 그런데 희망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단 말인가? 인간임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하는 생지옥, 그래서 춥다. 그러나 믿는다. 인간다움을 결코 잃지 않을 것임을. 비록 몸보다 마음이 더 춥고, 계절보다 더 춥게 느끼게 되는 시절이지만, 인간다움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