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장식적인 액자가 도로가 됐다. 손가락 굵기 만한, 자전거를 탄 중년 남자 미니어처가 액자를 길 삼아 씽씽 달리고 있다. 그림을 둘러싼 액자가 오브제가 되어 버렸으니, 회화의 경계는 풍경 그림까지인가 액자까지 포함하는 것인가. 또 이 작품은 평면일까, 입체일까.
회화와 오브제, 평면과 입체, 건축과 풍경을 서로 섞고 중첩시키는 이른바 ‘회화의 확장’ ‘풍경의 확장’ 실험을 해 온 중견 작가 유선태(58·사진)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바로 나다. 예술이라는 궤도를 쉼 없이 가고자 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식이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다.
대형 회화 작품 ‘말과 글-나의 정원’ ‘말과 글-나의 아틀리에’ 등에는 물음표(?) 형태를 한 기이한 나무가 나온다. 바로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상징 코드다. 이 기이한 나무에서 눈치 채겠지만, 그림 속 풍경은 극사실적으로 그려졌더라도 실재하는 게 아니다. 상상 속, 혹은 아스라한 유년의 기억 속 장면이거나 실제를 변형시킨 것이다. 한국의 설악산, 혹은 미국의 거대한 자연을 연상 시키는 풍광은 도저히 그것이 놓일 수 없는 인공미의 정점인 궁전 건축 너머로, 흑백의 타일이 절벽처럼 뚝 끝나는 지점 등에서 펼쳐진다. 때로는 지친 심신을 쉬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이 꿈속에서 표현된 것처럼, 자신의 아틀리에 밖에 그런 거대한 풍광이 비현실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풍경 역시 현실과 비현실,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작가는 풍경 속에 분신 같은 자전거 탄 남자, 책, 축음기, 시계 등을 배치해 비현실감을 극대화시킨다. 이를테면 책이 기러기처럼 풍경 위에 떠있고, 전혀 엉뚱한 위치에 축음기가 있는 식이다. 작가는 화면 가득 채운 건축물에 과감하게 노랑색을 썼다. 그런데도 그림 속 초록의 풍광과 자연스럽게 섞인다.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 대신 자신(꼬마 자유의 여신상)을 치켜든 작품,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WAY’라는 세 글자로 은유한 작품 등은 각각 자유의 남용, 성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위트 있게 비튼다. 예술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상상은 이렇듯 보는 사람도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작가는 “풍경은 건축을 담고 건축은 오브제를 담으며, 오브제는 다시 풍경을 담는다. 서로 순환하는 것”이라고 했다.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응용미술(공예)을 전공했다. 대학원 졸업 후 1980년대 초 파리로 건너가 국립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계기로 회화 작업을 해왔다. 그는 “제가 회화를 하는 걸 보고, ‘우리 회화계에 입문했다’고 하는 대학 동창이 있더라”며 “하지만 디자인, 공예, 회화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다 세계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장르는 서로 동등하고 순환하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29일까지(02-720-1020).손영옥 선임기자
유선태 가나아트센터서 개인전… ‘풍경의 확장’ 실험을 만난다
입력 2015-11-01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