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사회를 읽는 키워드로 ‘미인’을 내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이 하반기 기획전으로 마련한 ‘미인: 아름다운 사람’전이다. 아름다움의 대상으로서 여인이 어떤 방식으로 근현대 및 동서양 예술가들에 의해 창조되고, 소비되어 왔는지를 돌아보자는 취지다.
유화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가장 많이 그려진 장르 중 하나인 인물화를 비롯해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초월해 등장하는 인물을 소재로 다룬다. 일제강점기의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에서 입체파의 창시자 피카소(1881∼1919)까지 동서양 대표 작가 26명의 작품 40여점이 나왔다.
유족의 뒤늦은 사망 발표로 최근 미술가의 화제가 됐던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화백의 작품들이 마치 때를 맞춘 것처럼 다수 나와 관람객의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는다.
머리에 두른 화려한 화환과 여인의 무덤덤한 침묵이 대조돼 외로움의 정조를 자아내는 ‘고(孤)(1974년작), 내면의 고독을 샛노란 블라우스의 화사함으로 숨기려는 듯한 ‘청혼’(1989년작), 근현대 여성작가로서 최고가(12억원)를 기록한 ‘초원Ⅱ(1978년작)’ 등을 만날 수 있다. 결혼생활에서 두 번의 파경을 겪었던 천 화백은 ‘청혼’을 자신의 초상화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월간 주부 생활’에 기고했던 삽화 드로잉 ‘여인’(1974년작)도 공개됐다.
천 화백의 작품은 ‘여성 작가가 바라본 여성의 방’에 전시됐다. 함께 전시된 이숙자(73) 화백의 보리밭에 앉은 황량한 표정의 누드 여인(‘이브의 보리밭-파란 달개비’), 김명희(66) 작가가 칠판을 캔버스 삼아 그린 주부(‘김치 담그는 날’) 등에서 여성화가의 내적 갈등이 읽혀진다. 김명희 작품은 화가의 정체성을 갖고자 하는 작가에게 일상이 갖는 갑갑함을 칠판이라는 재료의 상징성을 통해 표현한 것이 놀랍다.
남성 작가가 바라본 여성의 이미지는 어떨까. 김흥수(1919∼2014), 김인승(1910∼2001) 등이 그린 여성은 서구적인 미끈한 몸매를 하고 있다. 누드도 빼놓을 수 없다. 이인성, 권옥연(1923∼2011), 임직순(1921∼1996) 등이 그린 전라 및 반라의 여성이 한 곳에 모여 있다.
한국미도 키워드로 내걸었다. 전통적 여인상을 가장 잘 그렸다는 평가를 듣는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작품인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한복 치마를 휘감아 쥔 전형적인 여인부터, 40대 여성 작가 정명조(45)가 남성 중심의 미적 기준을 비튼, 돌아앉은 한복 입은 여인까지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얼굴을 보이지 않는 여인의 뒷모습은 오히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니, 도촬의 시대인 현대에 대한 패러디인 셈이다.
다른 나라 작가들이 해석하는 현대 여성의 이미지도 흥미롭다. 영국 대표 작가 줄리안 오피(57)는 굵고 단순한 윤곽선으로 현대 여성을 그리고 있는데, 개성이 다른 게 아니라 스타일만 다른 현대여성의 몰개성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유명 작가 펑정지에(45)의 초록 머리, 빨간 입술, 사시 눈을 한 여성 이미지에서는 현대인의 불안함이 감지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서구 화가인 피카소, 르누아르(1841∼1973), 샤갈(1887∼1985)이 그린 여인 그림도 특별 세션으로 준비됐다. 7일에는 박영택 경기대 교수의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보이는 여성의 미’, 14일엔 이주헌 미술평론가의 ‘서양 미술에서 보이는 여성의 미’ 강연도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20일까지, 성인 9000원, 대학생 7000원(02-395-0211).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시대와 사회를 읽는 키워드 ‘美人’… 서울미술관 기획전 ‘미인: 아름다운 사람’
입력 2015-11-01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