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초여름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몇 년을 요양병원에 계셨다. 계속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라 욕창이 수시로 생겨 집에서 더 이상 구완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집과의 마지막이었다. 단 한 번 집에 오시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요양병원은 ‘요양’과 ‘병원’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좋은 뜻과는 달리 지금 생각해보면 다수의 노인들이 사실상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소 같았다. 죽음 뒤에는 늘 때늦은 후회가 따르는 법이라지만 과연 이런 곳에서 두려움과 막막함 속에 마지막을 기다린 할머니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죄스러움을 떨칠 수 없다.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 또한 중요함에도 ‘어쩔 수 없잖아’라며 통과의례로 대하기엔 죽음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이달 초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기관인 EIU는 ‘세계 죽음의 질 지수’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 80개국 가운데 한국은 18위였다. 임종 환자의 통증을 덜어주고 가족이 심리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비교적 높은 이 순위에 동의할 수 없다. 죽음을 앞두고 방문할 수 있는 병원 수, 치료의 수준, 의료진 수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을 뿐 임종과 관련된 국가 지원이나 가족의 심리적 회복 부문 등은 턱없이 낮은 국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죽음의 질을 높여주는 최선의 방편 중 하나는 호스피스다. 1967년 영국 런던의 한 병원에서 시작된 후 처음에는 통증완화 치료 정도에 그쳤으나 갈수록 정서적 안정에 치중하고 있다. 그래서 호스피스를 마지막 삶의 ‘편안한 마무리’를 위한 ‘총체적 돌봄’이라 일컫는다. 국내 호스피스 현실은 취약하다. 말기 암 환자 7명 중 1명꼴인 13.7% 정도가 이용하는 데 그친다. 이용 의사가 있다고 밝힌 비율은 59%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11월부터 호스피스 의료를 크게 확충한다. 호스피스 병상 수를 2020년까지 1400개로 확대키로 했다. 무엇보다 가정 호스피스를 도입한다는 게 눈길을 끈다. 죽음의 질을 크게 제고할 수 있는 기회다. 호스피스는 어쩌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돌봄인지 모른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가정 호스피스
입력 2015-10-30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