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팅으로 새 길 여는 의학계] ‘인공 귀’가 내 몸에… ‘인체’를 찍어낸다

입력 2015-10-30 21:48
윤인식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가 ‘귀 기형’ 환자에게 3D 프린터로 만든 귀를 이식하는 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A씨는 기형 귀의 일종인 소이증(小耳症)을 갖고 태어났다. 왼쪽 귓바퀴 형성이 안 돼 귓불만 있고 다른 부분은 거의 없다. 이런 경우 대개 자신의 갈비뼈에서 떼어낸 연골로 귀 모양을 조각해 기형 부위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A씨는 직업 특성상 가슴 연골을 채취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런 A씨에게 최근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인공 귀’를 만들어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연세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윤인식 교수는 국내 최초로 3D 프린팅을 이용한 귀 재건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실물과 똑같은 모양을 만들어내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귓바퀴’(연골 기틀)를 제작해 이식하는 것이다.

윤 교수는 30일 “귓바퀴 제작은 끝난 상태이며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소이증 외에도 외상이나 화상, 종양 등으로 귓바퀴에 결손이 있는 이들에게 3D 프린팅 기술이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 디스크 치료에도 3D 프린팅이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염진섭 교수는 목뼈 사이에 눌려서 튀어나온 디스크(추간판)를 긁어내고 대신 3D 프린터로 찍어낸 인공 디스크를 끼워 넣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인공 디스크 제작과 수술 과정은 이렇다. 먼저 환자의 목뼈 부위를 컴퓨터단층촬영(CT)한 뒤, 이 정보를 활용해서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CAD)으로 3차원 영상 도면을 설계한다. 수술 후 디스크 상태까지 예측해 3차원 영상을 완성한다. 이어 이 영상과 똑같은 형태의 디스크를 3D 프린터로 찍어내 고온에서 굳힌다. 프린터에 들어가는 재료는 인체에 적합한 ‘글라스세라믹’을 쓴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디스크를 소독해 환자의 목뼈 사이에 삽입한다. 염 교수는 “조만간 목 디스크 환자 5명을 대상으로 연구 임상시험(파일럿 스터디)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료 현장에서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수술은 점차 늘고 있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환자 개인의 신체 구조를 정확히 반영한 인체 모형을 만들고, 불가능하리라 예상했던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 3D 프린터는 사람 손으로 구현하기 힘든 정밀한 작업이 가능하다. 그래서 ‘환자 맞춤형 임플란트’(체내 이식형 의료기기)를 제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술 시간을 줄여 회복 시간을 빠르게 하는 장점 등을 갖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있었다. 다만 당시 3D 프린팅에 사용된 소재들은 사람의 몸 안에 넣는 장기를 만들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3D 프린터에 플라스틱과 세라믹, 금속을 재료로 넣어 출력할 수 있게 되면서 ‘체내 이식형 의료기기’ 제작으로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신동아 교수팀은 지난 8월 3D 프린터를 이용해 골반 뼈에 종양(골육종)이 생긴 환자에게 맞춤형 골반 뼈를 제작·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병원 심규원 교수는 2013년 머리뼈가 결손된 환자에게 3D 프린팅으로 찍어낸 두개골을 끼워 넣는 수술을 국내에서 처음 시도했었다. 심 교수는 지금까지 25차례에 걸쳐 비슷한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3D 프린팅 재료로는 인체에 적합한 금속 ‘티타늄’이 사용됐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발전 가능성이 더 있다고 본다. 살아 있는 세포나 단백질을 3D 프린터의 재료로 사용하면 부작용 등을 완벽하게 줄인 인공조직·장기를 찍어내는 시대가 조만간 올 수 있어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