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양천구 이마트 목동점. 오후가 되며 장을 보러 온 손님들로 붐비기 시작했지만 햄, 소시지를 파는 가공육 코너만큼은 한산했다. 소시지를 살펴보던 주부 김지연(37)씨는 “초등학교 1·3학년인 아이들이 좋아해서 먹지 않을 수 없다”며 “친환경, 수제 등 가격이 다소 높은 햄을 삶아주면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찜찜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공육 코너 근처에 있던 한 점원은 “보도가 나간 후 손님들이 가공육 코너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햄, 소시지 등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에 포함시킨 후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대형마트 등 소매점에선 가공육 판매가 급감해 제조업 등에서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지난 26일 IARC가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한 후 대형마트의 가공육 판매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27일에는 가공육 판매가 전주 대비 15.8% 줄었지만 28일에는 41.4%까지 줄며 감소 폭을 키웠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사정은 비슷해 두 회사의 이틀간 매출은 전주 대비 각각 23.7%, 21.0% 감소했다.
가공육 매출이 줄면서 제조사들은 혹시나 2004년 ‘아질산염 논란’이 불거졌을 때처럼 사태가 장기화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시 서울환경연합 등 시민단체는 어린이가 유통 중인 육가공 식품을 2∼3조각만 섭취해도 아질산나트륨 하루 기준치를 넘어선다고 발표해 육가공 매출이 급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1군 발암물질이라고 해서 “섭취 시 암을 유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가공육이 흡연이나 석면과 같은 위험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이날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주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권훈정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IARC는 발암 확률이 매우 낮더라도 발암 요인이라고 인정되면 발암물질 목록에 포함시킨다”며 “IARC가 흡연, 음주 등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지만 1군 발암물질에는 태양 광선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백형희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도 “우리나라 평균 가공육 섭취는 연간 4.4㎏으로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어서 너무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WHO 식품안전성 자문위원인 정상희 호서대 임상병리학과 교수는 “IARC는 칼슘 섭취 시 가공육에 의한 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며 “고기를 먹을 때 채소를 함께 먹는 우리나라 식생활 패턴을 보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했다.
단 가공육 등 육류를 과다 섭취하는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윤재 서울대 농생명과학부 교수는 “이번 발표는 서구처럼 과도하게 육류를 섭취하는 것에 대한 경고”라며 “우리 같은 경우 65세 이상 노인의 육류 섭취량은 오히려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김현길 최예슬 기자
hgkim@kmib.co.kr
“발암 물질 분류 가공육 먹어도 큰 문제는 없다”… 전문가들, 과민 반응 지적
입력 2015-10-29 2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