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위로부터 자진사퇴 압력받았던 연출가에게 또… 국립국악원 “박근형 빼고 공연하라” 파문

입력 2015-10-29 22:33
국립국악원이 국악연주단체 앙상블 시나위(오른쪽) 공연에서 연출가 박근형(왼쪽)이 맡았던 부분을 빼달라고 요구하자 앙상블 시나위가 공연을 포기했다. 현대무용 안무가 정영두(가운데)는 28일 이를 SNS에 알린 뒤 국립국악원의 다른 공연 출연 요청을 거부했다. 국민일보DB·수현재컴퍼니·LG아트센터 제공

국립국악원이 예정된 공연에서 극작가 겸 연출가 박근형(53)의 연극 부분을 빼라고 주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지난 9월 지원사업을 선정하면서 박씨의 작품을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29일 연극계에 따르면 국립국악원은 11월 6일로 잡혀 있던 기획공연 ‘금요공감’의 출연자인 국악연주단체 ‘앙상블 시나위’에게 박씨가 맡은 연극 부분을 빼 달라고 지난 24일 요구했다. 앙상블 시나위가 요구를 거부하자 국악원은 이날 공연을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대무용 안무가 정영두는 항의 차원에서 30일 ‘금요공감’ 출연을 거부했다.

국악원이 올해 3월부터 선보이고 있는 ‘금요공감’은 국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협업을 실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앙상블 시나위가 공연할 예정이던 ‘소월산천’은 김소월 시인의 시를 소재로 앙상블 시나위의 연주와 박근형이 이끄는 극단 골목길의 연극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28일 일련의 과정을 페이스북에 알린 정영두는 “누가 보더라도 특정 연출가를 겨냥한 탄압이며, 예술단체가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국가기관으로부터 사전검열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현 정부의 예술 검열과 예술인 탄압이 도를 넘어 개탄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국악원은 “공연장의 특성에 적합한 프로그램의 제작 협의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예술가를 향한 정치적 탄압이나 예술 창작행위에 대한 검열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 겸 연출가로 평가받는 박씨는 문화예술위가 진행하는 창작산실 지원사업에 선정된 후 자진사퇴를 강요받기도 했다. 2년 전 국립극단에서 제작한 그의 연극 ‘개구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게 문제가 됐다.

박씨를 비롯해 현 정권에 비판적인 연극인들에 대한 탄압 의혹은 9월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그러나 유사 사건이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17∼18일 연출가 김정이 공연예술센터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선보인 연극 ‘이 아이’도 문화예술위 공연예술센터로부터 공연 방해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주최 측인 공연예술센터가 공연을 위해 치워놨던 카페 안의 테이블과 의자를 원상태로 가져다 놓는가 하면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극작가 조엘 폼므라의 동명 연극 중 일부를 옮긴 것으로, 캠핑에 갔다가 죽은 아들을 시체 안치소에서 확인하는 여자와 그녀를 위로하는 이웃여자의 이야기다. 연출가는 이 작품을 각색하면서 캠핑을 수학여행으로 바꾸고 아들이 입었던 파란 점퍼를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제품으로 바꿨다. 이 브랜드는 지난해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이 많이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아이’ 공연 방해 사태 이후 후속 공연을 하기로 했던 다른 두 연출가는 공연을 포기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