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미국 보스턴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홀로 떠나며 불안감에 휩싸였다. 기껏 용기를 내 선택한 행동이 잘한 것인지 그 무렵에는 자신이 없었다.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사진) 이야기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최고의 재즈클럽 ‘블루노트’ 무대에 선 세계적인 뮤지션이다. 자신 없다며 시도하지 않았다면, 불안감 끝에 포기했다면 지금의 송영주는 없었을 것이다.
2005년 1집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로 데뷔한 송영주는 최근 10주년 기념앨범 ‘리플렉션(Reflection)’을 발표했다. 그녀를 29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학에서는 클래식을 전공했고, ‘주찬양선교단’ 소속으로 CCM 음악을 했었어요. 그런데 재즈가 너무 좋은 거예요. 2001년 덜컥 버클리음대에 가서 본격적으로 재즈를 공부하고 2005년 데뷔한 뒤부터 올해까지 10장의 음반을 냈어요.”
‘리플렉션’에 실을 9곡을 고르면서 지난 10년간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고 한다. 즐겨 쓰던 피아노 트리오 대신 5개의 혼(Horn)을 편성해 새로운 곡으로 만들어냈다.
“1집 음반을 다시 들어봤어요. 옛날 사진을 볼 때처럼 민망하기도 하고, 그 무렵 이런 연주를 하고 이런 곡을 썼나 싶어 새롭더라고요. 보스턴의 겨울, 곡 쓰던 시절의 느낌, 뉴욕에서의 생활, 함께했던 연주자들을 새록새록 떠올리면서 음악이 제 삶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그녀는 힘들었던 날들을 먼저 이야기했다. 첫 유학길, 공부를 하며 연습실 모퉁이에서 울었던 시간, 2006년 뉴욕 재즈클럽 공연에 도전하며 힘들었던 날들을 말했다. “뉴욕엔 재즈클럽이 무지 많아요. 아주 작은 곳도 있죠. 피아노, 드럼, 베이스 셋이 무대에 올랐는데 관객이 두 명인 적도 있었어요. 사비를 털어 세션들에게 차비를 내어주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어요.”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그녀는 더욱 단단해졌다. 2011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블루노트’ 무대에 섰고 이후 매년 블루노트의 초청을 받고 있다.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이 모이는 뉴욕에서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송영주가 정상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다. 재즈를 정말 사랑했던 것이다. “재즈가 너무 좋아요. 돈이 되는 음악은 아니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힘든 시간도 견디며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재즈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사운드, 자유로운 흐름이 좋아서 놓지 않고 있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재즈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합니다.”
지난해 뉴욕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온 송영주는 서울신학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김동률 심수봉 조수미 등과 공연 및 음반 작업을 함께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인터뷰] 데뷔 10주년 앨범 낸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 “재즈를 정말 좋아했기에 여기까지 왔네요”
입력 2015-10-29 2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