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에게 좋은 것을 다 해주려고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내가 어릴 때 이런 사랑을 받았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사춘기 자녀 문제로 상담하는 부모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아이를 위한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좌절감이 정말 가슴 아프게 절절히 다가오는 순간이다.
부모의 이런 절절한 마음과 달리 자녀는 이상하게도 그 사랑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엄마는 자기밖에 없어요. 나를 사랑한다고요? 잘 못 느끼겠네요.” 엇갈려도 한참 엇갈리는 사랑이다. 부모의 사랑이 자녀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풍성해진다”(빌 1:9)고 한다. 열매를 맺을 만큼 풍성한 사랑이 되려면 ‘지식(knowledge)’과 ‘통찰력(insight)’이 필수라는 것이다.
사랑은 나무를 키우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나무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 물이나 햇볕이 얼마나 필요하며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가지치기를 하는 게 좋은지 등 해당 나무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나무 종류에 따라 개별적 특성을 분별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사랑의 수고가 ‘열매’를 맺는다. 지나친 물과 잘못된 영양 공급은 성장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최선과 열정만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열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이 없는 사랑은 공허하고 때로는 의도치 않은 폭력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독립적인 인격으로 지어진 존재라는 점, 나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상황을 사는 존재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다.
내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과 올바른 방향으로 고쳐보겠다는 자만을 내려놓자. ‘내 아이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자세의 전환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이가 열 살이면 부모 또한 ‘부모 나이’ 열 살 아닐까. 아이와 같이 배우며 함께 커가는 것이 가장 좋은 부모다.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는 자신의 무지에 대한 깊은 절망과 인식의 전환에 대한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다양한 부모교육 세미나, 관련 서적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아이의 인격과 만나는 개별적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부모라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지시·기능적 언어를 최대한 자제하자. ‘네 생각은 어떠니?’ ‘엄마는 항상 네 생각을 지지해’와 같이 공감·발견적 대화를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 많은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며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세계를 열어 보여주기 시작할 때의 열매는 충분한 보답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사랑을 담은 지식과 통찰은 아이들의 믿음을 낳고 풍성한 관계의 열매로 이어진다.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15세상담연구소장)
[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사랑과 열매 사이
입력 2015-10-30 20:13 수정 2015-10-30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