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칼럼] 한국교회는 매여 있는가, 풀고 있는가

입력 2015-10-30 18:32 수정 2015-10-30 21:02

때때로 우리의 삶은 마치 브레이크에 걸린 자동차처럼 올무에 매여 전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과거의 상처와 실패로 인한 절망, 죄악의 습관에 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같은 매임의 근원은 사탄이다. 보이지 않는 매임은 세계관이나 이념 혹은 가치관으로 형성되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보이는 매임은 폭력과 억압, 때로 질병으로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탄의 매임에서 우리를 풀어주려 오셨다. 사탄이 인간을 묶는 최대 무기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셨다. 죽음마저도 얽매이게 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얽매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은 종종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으로 당시 유대 사회에 널리 펴져있던 매임을 푸셨다. 누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18년 동안이나 허리를 펼 수 없던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여인을 부르셔서 “여인아 네가 병에서 놓였다”고 말씀하셨다(12절). 그러자 여인은 허리를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마귀가 이 여인을 묶는 데는 18년이 걸렸지만 예수께서 여인의 결박을 푸는 데는 18분도 걸리지 않았다.

바로 그 때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난다. 회당장은 분노했고 예수께서 안식일 규례를 어겼다고 지적했다. 이 회당장의 분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회당장은 여인의 병이 나은 것을 기뻐하지 못하고 안식일 제도가 깨진 것에 분노했을까. 이와 비슷한 반응은 예수께서 베데스다 연못 옆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을 때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병자를 낫게했을 때도 나타났다. 사람들은 기적에 대한 경외감 대신 자신들이 세운 종교적 체계가 손상되는 것에 분노했다.

이 같은 왜곡된 종교적 감정은 1세기 유대인에게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는 엄한 안식일 규칙이 적용됐다. 한 목사는 안식일에 그 아이의 엄마가 먼 거리를 기차를 타고 왔다는 이유로 유아 세례를 거절했다. 미국에 처음 건너온 청교도들도 무자비한 안식일 제도를 시행했다. 1650년 뉴헤븐에서 제정된 법에 의하면 주일에 도둑질을 한 사람에게는 엄벌이 내려졌는데 처음 도둑질을 한 사람에게는 귀 하나를 베어내고 두 번째이면 다른 쪽 귀를, 세 번째이면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사형에 언도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청교도들이 안식일법을 율법적으로 적용하면서 많은 부녀자와 아이들이 투옥되고 매를 맞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신앙적으로 본받을 점이 많았던 청교도들까지도 이렇게 왜곡된 율법 적용을 서슴지 않았다면 오늘 이 시대에도 왜곡된 제도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같은 자들을 향해 ‘위선자(외식하는 자)’ 라며 책망했다. 위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윤리적으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이다. 둘째는 잘못된 것을 옳다고 믿음으로 생겨나는 집단 문화적 위선이다. 회당장은 윤리적으로 겉과 속이 달라 위선으로 지적받은 게 아니다. 그는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 보편적으로 믿고 있던 문화 속에 있었기에 분노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를 위선이라고 했다.

신앙공동체가 집단 문화적 위선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목적을 잃어버린 제도나 형식을 고수하려 할 때 생겨난다. 그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만 연구했지, 왜 지켜야 하는지를 연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왜 하는지도 모르는 일들이 계속 생겨났다. ‘어떻게’ 라는 질문은 ‘왜’ 라는 질문에 종속돼야 한다.

회당장은 자신이 믿는 종교적 제도가 무너지는 것에 분노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영혼이 병과 사탄에게 매여 있는 것에 분노했다(눅 13:16). 회당장은 율법을 원래 목적인 사랑의 실천 도구가 아니라 사랑을 말살하는 도구로 만들었다. 반면 예수님은 사랑을 막는 제도라면 어떤 제도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회당장이 예수께 붙인 죄목은 ‘안식일 파괴자’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 회복자’였다. 예수께서 풀어주신 것을 우리가 다시 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는 매여 있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속에 매임을 풀고 있는가.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