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 발전은 놀랍도록 많은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그 발전은 시대마다 아픈 흔적도 많이 남겼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발명품 중 하나는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인류 문화를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정보를 얻는다.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업무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처리하고 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스마트폰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능을 통해 세계 곳곳에 있는 이들을 친구로 만나 교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으로 말미암아 많은 문제가 파생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지나치게 의지한 나머지 ‘스마트 치매’라는 새로운 문제도 불거졌다. 전화번호를 제대로 암기하는 경우가 이제는 드물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가상공간 안에서의 친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만나서 함께하고 정을 나누는 친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SNS 상에서는 많은 친구가 존재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이들이 오히려 외로움에 빠진 경우가 흔하다. 급속하게 우리 사회의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SNS 상에서 오가는 대화의 형태는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힘든 짧은 단어 혹은 상징으로 이뤄진다. 축약된 단어가 나열된다. 언어야 어느 시대나 그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니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대화 속에 진정한 만남이 있느냐는 것이다. SNS 상에서 많은 친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나 여전히 외로워하고 아파하는 것은 정을 나누고, 아픔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나음은 멀리 있어 만나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함보다 남이라도 가까이 있기에 자주 만날 수 있어 유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을 좀 더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함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편 133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연합하고 동거함의 아름다움과 그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축복에 관한 노래다. 우리에게 바로 이 노래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연합하고, 동거할 줄 아는 ‘함께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지는 ‘얼굴 없는 만남’도 소중하겠으나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함께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을 때 공동체는 좀 더 따뜻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커다란 아픔은 많은 사람들이 이웃하고 있으나 실상은 서로가 전혀 ‘관계’ 없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신음하고 아파하는 이웃이 있어도, 심지어 이웃이 사망해도 알지 못하는 이웃을 정말 이웃이라 할 수 있을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표정을 읽어줄 수 있고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아픔까지도 함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살 만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원한다.
최범선 목사(용두동교회)
[시온의 소리-최범선] 함께하는 지혜
입력 2015-10-29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