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영과 TJ미디어의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 감경제도) 담합’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28일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리니언시 담합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반응이다. 담합 사건의 90% 이상을 리니언시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리니언시를 악용한 담합 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종 ‘이중 담합’ 수법 적발=리니언시는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권이 없는 공정위에게 담합 조사에 있어서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6년간 처리한 담합사건 188건 중 147건(78.2%)에 리니언시가 적용됐다. 리니언시로 담합을 저지르고도 기업들이 감경 받은 과징금은 같은 기간 1조7543억원이나 됐다.
리니언시로 담합 적발이 용이해졌지만 악용 사례도 늘고 있다. 가장 빈번한 사례는 오리발을 내밀다가 공정위가 현장조사를 나와 빼도 박도 못할 담합 증거를 잡으면 그 시점에 자진신고해서 과징금을 면제받는 것이다. 2012∼2014년 3년간 리니언시 적용사건 70건 중 60건은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자진신고가 이뤄졌다. 이번 금영과 TJ미디어의 리니언시 담합 역시 공정위의 현장조사가 이뤄진 직후 저질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를 뛰어넘는 리니언시 악용 수법이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가 이뤄진 직후 동종업계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리니언시를 활용한 팁들이 오고 간다”면서 “담합이 빈번했던 모 업종에서는 ‘리니언시 줄세우기’를 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에 비해 2, 3개 업체가 독과점을 이룬 시장이 많은 특성상 드러나지 않은 리니언시 담합은 더 있을 수 있다. 모 로펌 관계자도 “이번 적발 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력한 처벌규정으로 예방해야=지금까지 전력선 담합, 판유리 담합 등 몇몇 사건에서 공정위가 자진신고 기업에 리니언시 혜택을 부여했다가 이후 조사 비협조 등의 이유로 과징금 부과 전에 자진신고자 지위를 박탈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사전에 자진신고 순위를 짜고, 이후 과징금을 나눠 낸 사례는 처음이다. 공정위가 1년에 걸친 재조사로 금영과 TJ미디어의 리니언시 담합을 밝혀냈지만 내부고발자의 제보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건은 2011년 과징금이 부과되고 종결된 지 3년이 지난 뒤에야 제보를 통해 재조사가 이뤄졌다. 사실상 리니언시마저 담합할 경우 공정위가 이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리니언시 악용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처벌조항 신설이 어렵다면 공정위가 이날처럼 전원회의 비공개 안건으로 쉬쉬하면서 처리할 것이 아니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같은 사례를 알려 기업들에게 경각심이라도 일으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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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리니언시 담합’… 자수 순서 정한뒤 과징금 분담
입력 2015-10-28 2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