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역사교과서 국정화 공방] “여기 정부 일 하는 데예요” 경찰 증원 요청

입력 2015-10-28 22:34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5일 오후 구조 요청을 하듯 급박하게 경찰을 찾았다. 국민일보가 28일 입수한 녹취록을 보면 TF 관계자들은 야당 의원, 취재진이 서울 종로구 국립국제교육원을 방문하자 “침입을 받고 있다”며 9차례나 경찰에 출동을 재촉했다. 1차 신고 이후 출동을 장황하게 요구하자 경찰도 의아한 듯 “외국인이 침입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침입 시도 자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경찰, “기자와 국회의원이 침입?”=TF 관계자들은 25일 오후 8시17분쯤 처음으로 경찰을 찾았다. 첫 신고에서는 당황한 듯 대뜸 “여기 경찰 좀 보내주세요”라고 말한다. 경찰이 “위치가 어디세요”라고 묻자 국립국제교육원을 “국제회관 기숙사”라고 잘못 말하고, 주소는 “이화장길 81”이라고 말한 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어 20분 가까이 지난 오후 8시36분부터 37분 사이에 2∼4차 신고를 하며 “동숭동에 있는 국립국제교육원”이라고 주소를 밝혔다. 이어 “사무실 밖에서 20명의 사람들이 침입하려고 그런다. 빨리 좀 출동해 달라”고 요청했다. 2∼4차 신고는 거의 동시간대에 이뤄져 복수의 관계자가 신고 전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TF 관계자가 4차 신고에서 주소를 “외국인 장학생 숙소”라고 말하자 신고를 받은 경찰은 “외국인이 들어왔어요?”라고 되물었다. 이에 TF 관계자가 “아니요. 기자랑 국회의원이랑”이라고 답하자 경찰은 의아한 듯 “기자와 국회의원이 무슨 일로 침입했어요”라고 두 차례 다시 물었다.

TF 관계자가 당황한 듯 “아, 지금 신고 이미 됐다고 하는데요”라며 대화를 끝내려고 하자 경찰은 재차 “말씀해주셔야 경찰이 출동해 협조해드린다”고 요구했다. 이후 전화는 끊겼다.

◇“이거 털리면 큰일 나요.”…재촉과 호소=TF 관계자는 5차 신고에서 “외부인들이 창문을 깨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려고 그래요”라며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6, 7차 신고에서는 “언제쯤 도착하느냐”며 재촉했다.

이들은 경찰이 도착한 뒤에도 재차 신고를 했다. TF 관계자는 오후 8시47분쯤 신고를 하며 “(의원, 취재진) 20명이 있는데 (경찰관이) 2명밖에 안 와서 지금 감당이 안 돼요”라고 증원을 요청했다.

곧이어 처음으로 황급하게 신원을 밝혔다. 그는 “아, 여기 우리 정부 일 하는 데예요. 지금 여기 이거 털리면 큰일 나요. 있는 인원들 다 빨리 저기(국회의원과 기자들을 나가게) 해주세요. 교육부 작업실이란 말이에요”라고 호소했다. 또 “그러니까 2명 가지고는 안 되니까 빨리 좀 동원해주세요. 이거 동원 안 하면 나중에 문책 당해요”라고 재촉했다. 문책 대상에 TF 관계자와 경찰 모두 포함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어 1시간가량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TF 관계자는 오후 10시28분쯤 마지막 10차 신고에서 “지금 일단은 경찰관들 출동하신 것 같고 안 와도 되는데 저한테 계속 문자가 온다”고 말했다. 9차 신고는 TF 관계자가 아닌 듯한 인물이 전화를 걸어 “국회의원하고 현 정부 공무원이 문을 걸고 대치 중”이라며 “경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주세요”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인터폰 누르고 기다려”=새정치연합은 창문을 깨거나 침입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야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연합 도종환 김태년 유기홍 의원과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제보를 받고 오후 8시쯤 서울 종로구 국립국제교육원 정문 앞에 도착했다. 보좌진과 취재진을 합쳐 15명 안팎이 모였다. 건물 정문이 잠겨 있어 이들은 인터폰을 누른 뒤 답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TF 관계자가 나왔다. 야당 의원들은 “제보를 받고 확인차 방문했다.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TF 관계자는 “알았다”고 답한 뒤 돌아갔다. 당시 현장에 있던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창문에 방범창이 설치돼 있어 창문을 열든 깨든 내부 진입이 불가능한 구조였다”며 “의원들이나 보좌진은 창문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했다.

새정치연합 보좌관을 지낸 고양미래전략연구소 강동기 소장은 “불법 감금이라는 여당과 교육부 주장과 달리 TF 관계자들이 수차례 경찰을 동원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성수 문동성 기자 joylss@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