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도… 美 경찰, 흑인 여학생 패대기

입력 2015-10-28 22:11
26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스프링밸리 고등학교 교실에서 이 학교의 안전 담당관인 백인 경관 벤 필즈가 흑인 여학생의 목을 잡고 레슬링하듯 메다꽂은 뒤 팔과 다리를 잡고 교실 한쪽으로 질질 끌고 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백인 경관이 흑인 여학생을 패대기쳐 제압하는 장면이 27일(현지시간) 온라인에 퍼지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 등 수사당국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영상은 사건의 일부”라는 일각의 신중론에도 불구하고, 유색인종을 향한 경찰의 공권력 남용이 연중 내내 화두가 된 미국에서 또 한번 뿌리 깊은 인종차별 논란이 촉발되는 분위기다.

전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프링밸리 고교에서 휴대전화로 촬영된 복수의 동영상을 보면 백인 경관이 흑인 여학생에게 다가가 “(얌전히) 집으로 돌아갈래, 아니면 내가 (강제로) 그렇게 해 줄까”라고 말한다. 반응이 없자 팔을 잡아 일으키려던 경관은 이 학생이 뿌리치며 저항하자 곧바로 목을 감아 ‘레슬링 하듯’ 뒤로 들어 메쳐버린다. 쓰러진 학생은 교실 앞으로 질질 끌려가고 “손 등 뒤로 해, 손 내놔”하는 명령이 들린다.

해당 영상이 온라인에 확산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공권력 남용과 인종차별 의혹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유력 대선주자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트위터에 “학내 폭력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학교는 안전한 장소여야 한다”고 동참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리치랜드 경찰은 영상 속의 학교안전담당관 벤 필즈를 일선 업무에서 배제하고 감찰에 착수했다. FBI와 법무부 인권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검찰 등 세 기관도 한꺼번에 수사에 돌입했다.

해당 학생의 수업방해 등 정황을 정확히 알기 어렵고 필즈가 사전경고를 했다는 점에 주목해 영상만으로 마녀사냥을 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비디오를 판독해보니 여학생이 주먹으로 필즈를 가격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필즈의 과격한 제압에 대해 항의하다가 함께 구금된 또 다른 흑인 동급생 니야 케니는 NBC방송에 “그녀가 제압될 당시 경관을 치려하거나 욕설을 하긴 했다”면서도 “주먹이 닿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성인 남성이 어린 소녀에게 그렇게 과한 폭력을 휘두르는 건 생전 처음 봤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울면서 항의하자 필즈가 “말이 많다. 너도 나와라”고 윽박질렀다고 전했다. 특히 필즈가 평소 “‘슬램(메다 꽂는) 경관’으로 악명 높았다”면서 “그가 들어왔을 때 분명 뭔가 안 좋은 일이 터질 것을 직감했다”고 덧붙였다.

여론도 교실에서 별 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여학생을 폭력적으로 제압한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쪽이 더 우세하다. 이 지역 교육이사회 의장인 제임스 매닝은 이번 사건을 “불필요하고 과도한 공권력 사용”으로 비난하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의 안전과 존엄은 우리의 최우선순위”라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같은 날 미묘한 타이밍에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경찰청장협회(IACP) 연례 총회에 참석해 “특히 흑인·히스패닉계와 경찰 사이 긴장이 더 높은 이유는 ‘법집행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불신감이 조성된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권력과 소수인종 간의 반목에 대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고 푸념하면서도 “사회적 병폐를 경찰이 모두 해결할 수 없다”며 사법제도 개혁과 총기규제 강화 등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