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은 늘고 있는데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자기 부처에 근거 없는 예산을 편성해 재정 건전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예산안이 나올 때마다 재정 건전성 논란이 반복되면서 전략적 지출검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행한 보고서를 보면 기재부의 2016년 예산안은 사업별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예산이 과다계상되거나 중복 증액된 사례가 많았다.
예정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예산안 편성지침까지 어겨가며 예산을 배정했다. 기재부는 ‘ASEAN(아세안)+3재무장관회의’ 활성화와 ‘아세안 및 한·중·일 거시경제조사기구(AMRO)’의 운영비 부담을 위해 ASEAN+3 금융협력 사업에 국제 부담금을 올해 예산보다 2억3500만원 늘린 13억400만원을 편성했다. AMRO TA(기술지원) 프로그램을 위한 국제부담금 1억1400만원을 추가한 것이 증액 이유였다.
그러나 국제부담금 납부를 위한 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이 책정됐다는 게 예정처의 설명이다. ‘2016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 계획안 작성 세부지침’을 보면 국제부담금의 경우 이를 명시한 협정서가 있거나 관계부처 협의·국무회의·장차관회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반영할 수 있다.
서울 동대문구 홍릉에 조성 중인 ‘지식협력단지’ 예산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이 단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공실이 된 곳을 내년까지 리모델링해 2017년 1월 개관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기재부는 단지 조성과 운영 사업으로 179억8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예정처는 단지 조성이 내년 말에나 끝나는데 운영사업비(31억9000만원)까지 무리하게 집행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봤다. 문도 열기 전에 비품비, 학습자료비까지 챙겼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개관에 앞서 시스템 설비 등을 구축하려면 운영사업비도 미리 받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용역도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지난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을 발표하면서 그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국민점검반을 구성했다. 기재부는 국민점검반이 내년도 6개 과제 점검을 위해 올해보다 100% 증액한 2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국민점검반의 점검과제는 이를 담당하는 각 부처의 연구용역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점검과제였던 창업·벤처 활성화, 해외건설·플랜트 수출 고부가가치화, 국가직무능력표준 등의 연구용역도 해당 부처와 중복됐다.
학계에선 재정건전성 논란을 없애려면 재정투입 우선순위를 검토해 배분하는 전략적 지출검토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제도는 현재 영국과 네덜란드, 호주, 캐나다 등이 시행하고 있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은 정부가 사업별로 재정사업의 성과를 관리하고 있다”며 “상위 분야인 사회기반시설·복지·국방 등으로 나눠 재정투입 우선순위를 배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기재부도 2017년부터 일부 분야를 대상으로 시범 실시할 계획이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기획] 수억 과다 계상·중복… 기재부, 주먹구구 예산 편성
입력 2015-10-28 22:32 수정 2015-10-28 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