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지던 ‘국정화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새누리당 고위관계자는 28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이렇게 평가했다. 수도권 의원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고, 친박(친박근혜)계는 ‘주무장관 책임론’을 제기하는 등 ‘적전분열’ 양상으로 흐르던 전선이 박 대통령이 던진 짧고 단호한 메시지로 재정비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도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냈지만 주변에선 말리는 목소리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화 추진이 좌파 진영 결집과 함께 ‘과거 독재시대로의 회귀’라는 공격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정치인이 지지율을 신경 쓰다 보면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자기를 위한 정치를 하게 된다”며 소신을 꺾지 않았다고 여권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독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박 대통령이 국정화에 단호한 의지를 밝힌 것을 두고는 “늦은 만큼 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보수정부인 이명박정부에서도 김대중·노무현정부 때 역사 교과서에 반영된 좌파 인식이 수정되지 않는 등 무려 15년간 굳어진 학계나 교육현장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더 강하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정면승부를 택한 밑바닥에는 ‘도덕적 우월감’도 깔려 있다는 평가도 있다. 새누리당 영남권 중진 의원은 “박 대통령은 철저한 주변 관리로 친인척이나 측근비리로 지지율이 급락했던 역대 정권과 달리 임기 말까지 탄탄한 지지기반을 유지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소신껏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계기로 새누리당은 고삐를 다시 쥐는 모습이다. 지도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포함한 정기국회의 산적한 민생현안이 뒷전으로 밀리면서 경제와 민생에 타격이 예상된다며 야권을 압박했다. 민생과 경제를 내세워 야당에 ‘장외투쟁 세력’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전략이다.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금 역사 교과서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대표는 이어 “야당이 책임 있는 공당이라면 지금의 부실 교과서를 그대로 둬선 안 된다”며 “장외투쟁하지 말고 국회에서 민생법안과 예산 처리에 열과 성을 쏟아 달라”고 촉구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절박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경제활성화를 얘기했지만 야당에서는 민생의 간절한 외침이나 대통령에 대한 예우까지 어느 것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원내 지도부 회동과 자유무역협정(FTA) 여·야·정 협의체 활동에 조속히 응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 대표는 당 중앙위원회가 국회에서 연 ‘역사 바로 세우기, 올바른 역사 교과서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역사 교과서 국정화 여론몰이도 병행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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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28 2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