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함께하는 영화제에 대리수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배우에게는 상을 주지 않을 것이다.” 다음 달 20일 열리는 제52회 대종상영화제를 앞두고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근우 사업본부장이 밝힌 내용이다. 해마다 잡음이 끊이지 않고 시상식에 불참하는 배우들이 많아 영화제 측이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다.
1962년 제1회 시상식이 열린 대종상은 국내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 중 하나다. 하지만 수상자 선정의 공정성 시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1996년 제34회 대종상은 ‘애니깽’이 작품상을 탔다. 작품 수준은 고사하고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가 상을 받아 문제가 커졌다. 이후 ‘애니깽’ 제작사가 일부 심사위원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 대종상은 망신을 샀다.
2009년 제46회 대종상은 여우주연상 후보를 두고 시끄러웠다. 정식 개봉도 하지 않은 ‘하늘과 바다’의 주인공 장나라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해운대’와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열연한 하지원은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영화제 측에서는 “하지원은 두 작품이 동시에 출품돼 표가 갈려 최종 후보 5명에 들지 못했다”고 밝혔으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2012년 제49회 대종상은 당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5개 부문을 휩쓸었다. 시상식장에 있던 영화인들은 박수를 보내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광해’가 15개의 상을 받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지나치게 몰아준 게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네티즌들은 “대종상은 대충상(대충 주는 상)이냐” 등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광해’의 독식은 아마추어적인 심사 방법에서 비롯됐다. 공정성 시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반인 예심과 전문가 본심에서 토론을 배제하고 ‘블라인드 심사’를 한 게 문제였다. 심사위원들이 후보작에 대한 토론 없이 각자 점수를 주다보니 오히려 몰아주기라는 뜻밖의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주최 측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대종상이 공정하지 못한 심사로 스스로 권위를 잃자 영화인들도 수상을 더 이상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고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온 게 ‘출석체크’다. 2011년 심은경이 ‘써니’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뒤 학업 일정 때문에 시상식 불참 소식이 전해지자 후보에서 제외된 적이 있지만 불참자에게 상을 주지 않겠다는 엄포가 얼마나 통할지 두고 볼 일이다.
영화제 측은 새로운 출발과 영화인 화합을 위해 역대 수상 배우를 모두 초청하고 레드카펫 행사도 가질 계획이다. 나눔화합상을 새로 만들어 사회 환원에 노력한 영화인에게 시상한다. 세계적인 축제로의 도약을 위해 중화권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해외 부문상을 신설했다. 북한 영화인 참석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대종상이 정말 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행사도 중요하지만 추락한 권위를 회복하는 관건은 심사의 공정성에 있다. 영화인과 일반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지난 1년간 국내 극장에서 상영된 한국영화를 대상으로 후보작을 고르면 전문 심사위원단이 최종 수상작과 수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그런데 인기상 후보 네티즌 투표를 두고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남자 배우는 김수현, 여배우는 공효진이 최상위에 랭크돼 있다. 두 배우의 인기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1년간 출연한 영화가 없다는 점에서 후보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내일을 열며-이광형] 대종상이 ‘대충상’ 안 되려면
입력 2015-10-28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