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 사회적 대타협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역사적 전환점이자 한국 모델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고비를 더 넘어야 한다. 첫 고비는 합의사항을 입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지금의 국회 사정을 보면 여야 간 노동개혁을 위한 별도의 협의와 정치적 대타협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고비는 합의사항을 산업현장으로 확산시키는 일이다. 9·15 노사정 대타협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설계도라 할 수 있다. 이를 현장에서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노사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민관합동 노동개혁추진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부처 간 정책 조율과 함께 민간 역량을 모아내는 정부의 이니셔티브가 중요하다.
우선 넘어야 할 고비는 노동개혁법안의 처리다. 이번 대타협의 구체적 성과이기도 한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과 근로시간제도 변경 문제는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타협을 시도하다 실패했던 난제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그동안 치르지 않아도 될 많은 비용을 개별기업의 노사가 감당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밀린 숙제다. 실업급여의 확충과 산재 범위의 확대를 위한 관련법 개정도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노사정 합의사항이다. 기간제와 파견근로 관련 사항은 지금 한창 노사정위원회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올해 초 이미 검토했던 이슈이기 때문에 다시 타협을 시도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타협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11월 중순까지 집중적인 논의를 거쳐 합의사항과 미합의 사항 등 논의결과 일체를 국회에 넘기면 법안 심의에 참고가 될 것이다.
노동개혁의 성패가 노동5법 개정 여부로만 판가름 나는 것은 아니지만 여야가 정치적 타협에 실패한 채 정기국회가 끝나버린다면 대타협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상황은 정치적 갈등의 증폭으로 그간 쌓아놓은 노사정 간 신뢰와 협력 기반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교훈은 독일이나 네덜란드 사례에서 보듯이 노동개혁을 위한 초당적 협력이 있어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법이 바뀐다고 노동시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9·15 대타협이 담고 있는 더 많은 내용은 법이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각종 규칙과 협약, 근로 관행과 직장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고도성장기의 연공주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제도와 관행을 직무와 능력에 기초한 노동시장으로 전환해야 청년고용의 숨통이 트이고 50대의 조기 명예퇴직을 줄일 수 있으며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수많은 노력이 합쳐져야 가능한 지난한 과정이다.
이러한 대전환을 관통하는 기본정신은 기득권 내려놓기와 솔선수범이다. 이번 대타협도 조금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이 조금 양보하겠다는 노사정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대타협 정신이 산업현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임금피크제 확산, SK하이닉스나 금융 노사의 양보 교섭, 사회지도층의 청년희망펀드 조성과 대표기업들의 청년고용 확대 노력들은 대타협 정신의 구체화에 해당된다. 이러한 작은 성과들을 노동개혁의 큰 흐름으로 묶어내는 체계적인 노력이 더욱 경주돼야 한다.
이번 대타협의 가장 큰 성과는 1987년 체제에 내재해 왔던 대립과 갈등의 고리를 끊어내는 첫걸음을 뗐다는 점이다. 경제가 위기상황이 아닌데도 청년실업과 비정규직문제 해결을 위해 끈질긴 대화와 타협을 이뤄냈다는 것은 한국 노사관계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러한 노사 협력의 풍토를 지역과 업종, 각 사업장으로 확산시켜야 하고 그래야 노동시장 구조개혁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최영기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시사풍향계-최영기] 노동개혁 위한 정치적 대타협을
입력 2015-10-28 18:08 수정 2015-10-28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