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를 경험했다. 그렇지만 현재도 질병의 경·중을 가리지 않는 환자들의 대도시·수도권 집중화 또는 대형병원의 쏠림현상은 여전하다. 특히 1차 의료기관과 2·3차 의료기관 간의 환자에 대한 진료정보 전달체계의 붕괴는 환자들로 하여금 진료·검사비의 이중지출을 초래해 의료비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11년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계획을 통해 의료기관 종류별 표준업무규정 마련, 경증 외래환자의 본인부담 차등제 도입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환자를 경증, 중증으로 단순히 분류하기는 쉽지 않아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만 사고 있는 실정이다.
이상적인 의료전달체계는 의료서비스를 적정한 시기에 적정한 곳에서 받도록 하는 것이다. 3차 의료기관은 1차·2차 의료기관으로부터 의뢰된 환자들에게 종합적이고 난이도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의학교육을 담당해야 한다. 3차 의료기관은 경증환자를 진료하며 1·2차 의료기관과 경쟁하는 곳이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1차·2차 의료기관이 상급병원으로 가기위한 조건인 ‘진료의뢰서’를 받기 위한 곳(성형외과 등 일부 과를 제외하고)으로 변질됐고, 상급종합병원 역시 경증질환자가 와도 1차 의료기관으로 회송하지 않는다. 이는 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의료기관별 기능재정립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여기에 의원-병원-대형병원 간 경쟁구도는 병원이 의원에 가야할 환자를 진료하게 하고, 더 많은 환자 진료를 위해 지나친 시설과 장비에 투자를 강요하며, 투자비용 회수를 위해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만든다.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의료전달체계 현황분석 및 개선방안’ 자료에 따르면 의과계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급여비 중 동네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45.5%에서 2014년 27.5%로 급격하게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상급종합병원의 급여비 중 외래수입의 비중은 21.5%에서 31.3%로 급증했다.
방임 수준의 의료기관 선택권도 문제다. 2시간 이상 기다려 3분 진료를 받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여전히 대형병원을 선호한다. 이는 대형병원이 환자를 독점하는 현상의 원인이다. 따라서 환자들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의료전달체계 재정립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의료전달체계 붕괴는 국민의료비 부담 증가와 건강보험재정 악화를 초래한다. 의료정책연구소의 ‘의료전달체계 현황분석 및 개선방안’에 따르면 단순 감기의 경우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내원일당 진료비는 동네의원의 1.6배∼2.6배 높고, 소화불량·위염 등 단순 소화기계 질환은 3∼4배 가까이 높다. 특히 동네의원의 외래진료로 해결할 수 있는 52개 경증질환의 경우 상급종합병원은 의원의 3배, 종합병원은 의원의 2.2배 진료비가 비싸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출신 장관의 가장 큰 임무라고 인식하고 임기 내에 성과를 내겠다”며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강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를 위해 ▲진료의뢰·회송절차 강화 ▲경증질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외래 및 단순 응급진료 제한 ▲의원 역점 경증질환 확대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 강화 등을 대안을 제시했다. 향후 정부가 어떤 개선책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조민규 기자 kioo@kukimedia.co.kr
[기자의 눈] 와해수준 이른 의료전달체계
입력 2015-11-01 1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