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출산박람회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 중 하나가 제대혈보관 업체들인데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산모의 마음을 악용해 일부 가족제대혈은행들이 소비자에게 불평등한 계약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끝난 2015년 국정감사에서 가족제대혈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음에도 관계 당국은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돼 대대적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제대혈은 출산 시 탯줄 및 태반에 존재하는 혈액으로 골수와 마찬가지로 혈액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뿐 아니라 연골·뼈·근육·신경 등을 만드는 줄기세포가 들어 있어 의학적으로 중요하게 활용된다. 백혈병을 비롯한 각종 암, 재생불량성 빈혈이나 겸상적혈구 빈혈과 같은 난치성 혈액질환, 고셰병, 선천성 면역결핍증과 같은 선천성 질병 등을 치료하는데 도움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예비 부모들을 유혹하고 있다.
제대혈은행은 제대혈을 필요할 때 녹여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대혈을 채취해 냉동보관해 주는 업체들을 말하는데 보관 및 사용주체에 따라 가족(위탁)제대혈과 기증제대혈(비혈연간 질병치료 또는 연구 등을 위해 대가없이 제대혈 은행에 제공)로 나뉜다. 문제는 가족제대혈의 경우 산모가 신생아 또는 혈연간의 질병치료를 위해, 즉 개인적인 사용을 위해 고비용을 지불하고 제대혈은행에 보관·위탁하지만 실제 사용은 드물고, 제대로 보관되고 있는지, 사용은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가족제대혈 부적격 건수(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실 제공)는 2549건으로 △오염 942건 △바이러스감염 246건 △세포수부족 561건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는 제대혈은행의 문제점이 지적됐는데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은 “2014년 말 기준으로 52만3487건의 제대혈이 보관돼 있는데 가족제대혈은행은 산모들을 대상으로 아이가 백혈병 등에 걸릴 경우 보관한 제대혈로 치료할 수 있다며 홍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제대혈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인 ‘유핵세포수’를 보면 1㎏ 당 약 1500개가 필요한데 기증제대혈은행의 기준인 8억개의 유핵세포수와 80%의 생존율을 대입할 경우 이식받을 아이의 체중이 42㎏까지만 이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보는 설명하는 사람들이 의료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장밋빛 전망만 소비자에게 전달해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유혹(아이가 평생 동안 쓸 수 있다는)에 소비자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S사의 경우 제대혈 평생보관형(100년)은 400만원에 달하고, 프리미엄형(30년) 200만원, 안심형(20년) 160만원, 일반형(15년) 135만원에 달한다. 이 회사에서 눈길을 끄는 점은 조혈모세포이식의 경우 공급비용을 제공해 보장성을 강화하는 듯 밝히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건강보험에서 조혈모세포 이식의 적응증으로 인정하는 경우에 한정하고 있어 실제 얼마나 적용될지는 의문이다. I사는 100년 상품이 560만원으로 가장 높은데 병원과 연계해 혜택을 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 회사는 30년 210만원, 20년 보관 167만원, 15년형은 99만원과 125만원의 상품이 있다. C사는 평생보관형의 경우 350만원, 30년 보급형 235만원, 20년 보관 165만원, 15년 보관 125만원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지난 3년간 자가제대혈(가족제대혈) 사용건수가 7건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가족제대혈 계약 불만에 대해 “사적 계약으로 정부에서 관여하기 힘들다. 국회에서 사적계약의 약관을 하나하나 지적했는데 제대혈은행들이 표준약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체마다 다르다. 때문에 표준약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으며, 소비자에게 불합리한 약관이 있다면 개선을 권고하고 있다”며 “현재 소비자약관부터 제대혈 전반에 대해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며, 연말에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개선을 검토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듯 과대·과장광고를 하는 경우 제대혈법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유핵세포수 등 다양한 제약조건을 명시해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할 필요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2년마다 제대혈은행 현지에서 심사·평가를 실시한다. 2013년 처음 진행했고, 현재 두 번째 심사·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기증제대혈 역시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윤옥 의원에 따르면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2011년 이후 2013년 말까지 산모로부터 기증받은 제대혈 총 개체수는 2만4056건으로 이중 △오염(107건) △바이러스 감염(74건) △세포수 부족(1만2869건, 1unit 당 최소 세포수 8억개 미만) 등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기증제대혈은 1만4615건에 달한다. 즉 검사를 통과해 이식이나 치료를 위해 보관되고 있는 개체수는 기증제대혈의 40%도 안 되는 9441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난치성 혈액질환과 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제대혈은 큰 희망”이라며 “더욱 체계적이고 적절한 관리를 통해 제대혈 폐기율을 낮추고, 제대혈 활용율은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백혈병 등 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요한 환자의 90%가 조직적 합성 항원 기증자를 찾을 확률에 이르기 위해서는 10만 개체의 기증제대혈을 확보해야 돼 정부는 관련 학회나 산부인과 등에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부족한 실정인데 최근 5년(2009∼2013년)간 연도별 기증제대혈 보관 개체수는 2009년 4961개, 2010년 4751개, 2011년 2884개, 2012년 3277개, 2013년 3280개 등 1만9153개이다. 복지부는 기증제대혈은행 5개소를 지정·운영중으로 총 3만6628unit(2014년 기준)의 제대혈을 보관중이며, 매년 22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또 지난해 10월 건강보험 적용을 통해 기증제대혈 1unit 당 공급단가를 400만원에서 10만3000원에 사용할 수 있다.
조민규 기자 kioo@kukimedia.co.kr
가족 제대혈, 사용 드물고 보관 어려운데… 왜 위탁업체 ‘유혹’ 방치하나
입력 2015-11-01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