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사의 화성 생존기를 다룬 영화 ‘마션’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28일 현재 400만명이 넘게 봤다. 영화는 홀로 화성에 남겨진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가 물을 만들고 감자를 키우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과 지구인들의 구출 노력이 담긴, 어찌 보면 단순한 스토리다. 하지만 수많은 한국인들은 신비로운 화성의 모습과 주인공의 눈물겨운 사투를 보며 감동을 받고 있다.
앞서 지난해 개봉된 ‘인터스텔라’는 10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영화는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한 채 멸망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떠나는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한국에서의 대성공과 달리 영화는 정작 미국 등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다소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소재의 작품인데도 한국에서 많은 관객들이 찾아줘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두 영화만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남다른 게 분명하다.
이쯤에서 퀴즈 하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 세계 최대 IT 업체 구글의 공동 설립자 래리 페이지,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모터스 창업자 일론 머스크,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폴 앨런, 영국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개인 재산이 수십억에서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갑부이자 우주산업에 뛰어든 기업가들이다. 페이지는 우주광산 개발회사 ‘플래니터리 리소시스’에 투자했는데, 이 회사에는 영화 ‘아바타’로 유명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등도 참여하고 있다. 일부는 전 세계 상위 1%의 우주여행을 위해 오히려 그 지역의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주를 향한 인류의 꿈을 일깨워주는 긍정적 측면이 더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2002년 스페이스 엑스를 만들며 ‘화성 식민지 건설’을 기치로 내건 머스크는 그저 돈 많은 괴짜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인터넷 결제회사 페이팔의 CEO를 지낸 그는 페이팔이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매각되면서 번 거액을 스페이스 엑스에 ‘몰빵’했다. 연이은 로켓 발사 실패로 무일푼 지경으로 몰렸지만 7전8기 끝에 민간 우주항공시대를 여는 데 결국 성공했다. 창업 당시 “2030년까지 유인우주선을 화성에 보내 8만여명이 거주할 수 있는 자립도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왜 우주산업에 뛰어들었느냐고 묻자 “후세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고 답했다. 영화 ‘아이언 맨’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이쯤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의 벤처 갑부들과 재벌 총수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우주시대를,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벤처 1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게임이나 검색, 쇼핑 등 여전히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매몰돼 있다. 후발 주자들도 비슷하다. 오히려 독점을 하고 진입장벽을 세우며 재벌의 문어발식 성장을 흉내내고 있다. 대기업은 어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얘기는 횡령이나 갑질, 담합, 비정규직 양산, 뭐 이런 것들이다. 재벌 2, 3세들의 골육상쟁은 하도 많아서 이젠 뉴스거리도 아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화성에 갈 수 있을까? 부(富)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 지금처럼 치부의 수단, 증여의 대상으로만 보는 이들에게서 미래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 전 재산을 대한민국의 달 유인우주선 발사에 투자하겠다.” 꿈속에서라도 이런 한국 기업인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한민수 문화체육부장 mshan@kmib.co.kr
[데스크시각-한민수] 화성으로 가는 길
입력 2015-10-28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