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를 끼고 흐르는 여강(驪江)이다. 그런데 도대체 여강이 어디지? 공식 이름은 남한강이다. 남한강 물길 중 여주를 휘감아 도는 40여㎞ 구간을 부르는 이름이다. 남한강보다 더 정겹다. 금강이 부여를 지나면서 백마강이 되는 것과 같은 셈이다.
여강을 멀리서 바라보기에는 파사성(婆娑城)이 그만이다. 한강 중류의 여주시 이포에서 2㎞쯤 내려가면 대신면 천서리 강 건너 동쪽으로 해발 230.5m의 파사산이 위치하고 있다. 파사성은 바로 이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축성한 야산의 산성으로 성벽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둘레는 약 943m이며 성벽 중 최고 높은 곳은 6.25m, 낮은 곳은 1.4m다. 천서리를 면한 동문지(東門址), 금사면 이포리를 면한 남문지에는 문앵(門櫻)을 세웠던 고주형초석 2기와 평주 초석이 남았고 동문지에는 옹성문지가 남아 있다. 신라 파사왕 때 쌓았다고 전해진다. 고대 파사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던 터라는 전설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선조 25년(1592년)에 임진란이 일어났을 때 류성룡의 발의에 따라 승군을 동원해 쌓은 둘레 1100보의 성첩을 중수한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남한산성에 대한 비중이 증가해 파사성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했다. 성 일부는 강 언덕에 돌출된 자리를 잡아 남한강의 상·하류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주차장에서 성 정상까지는 860m. 보통 걸음으로 30분이 채 안 걸린다. 가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벼운 등산을 하기에도 그만이다. 성으로 오르는 산길은 가을빛이 완연하다. 숲에 내려앉은 단풍이나 성을 이루는 돌 위에 올라앉은 담쟁이덩굴에도 붉은 빛이 그득하다. 성곽은 일부 무너진 뒤 정비됐고 일부는 옛날 그대로다. 중간쯤부터는 복원이 잘 돼 있다. 성 위를 걷는 길은 옛날 로마시대 대로처럼 잘 닦여 있다. 중간에 한 나무에서 두 줄기가 자란 소나무를 그대로 둔 채 성곽이 이어진다. ‘연인소나무’다.
정상이 가까워졌을 때 뒤돌아보면 성벽이 저 아래 세상을 향해, 강줄기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것이 용틀임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밭은 숨을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보면 사방이 막힘없이 탁 트여있다. 최근에 쌓은 이포보가 물길을 가로지른 여강이 유유히 흐른다.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다리도 보인다.
파사산과 산성은 원추형을 연상시킨다. 성벽을 살펴보면 초창기의 성벽과 그 뒤 여러 차례 수리한 때의 성벽을 구별할 수 있다. 이 산에 따른 다른 산봉이 없이 우뚝 자리한 산이어서 산정에 오르면 눈 아래에 사방이 굽어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낮은 산에서도 멀리 용문산이 바라보인다.
영릉(英陵)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역사성과 우수성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남한강의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됐다. 1446년(세종 28년)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현 서울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만들었다.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했고 1469년(예종 1년)에 여주로 옮겨 왔다. 당시 세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했다.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진 것)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해 합장릉임을 표시했다. 기존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해 방위를 표시했지만 영릉은 이를 간소화해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했다.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해시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등 각종 과학기구를 복원해 놓았으며 대왕의 업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유물과 자료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도 있다. 인근 영릉(寧陵)은 조선 17대 임금 효종과 비 인선왕후의 쌍릉이다. 경기도 양주에 있던 능을 1673년 이장했다.
명성황후가 태어나 8세까지 살았던 생가도 있다. 1687년 숙종의 장인 민유중의 묘막(墓幕)으로 건립된 것이다. 당시 건물 가운데 남아있는 것은 안채뿐이었으나 1995년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됐다. 명성황후가 어렸을 때 공부한 방이 있던 자리에 ‘명성황후 탄강구리(明成皇后 誕降舊里·명성황후가 태어난 옛 마을)’라고 새겨진 비가 자리한다. 입구를 지나 정면에 보이는 명성황후 기념관에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영정, 명성황후의 친필 등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강천섬은 자생수목을 활용한 자연공원으로 법정 보호종인 단양쑥부쟁이 서식처가 있으며, 인근의 바위늪구비 습지 등과 연계한 생태학습공간으로 활용된다. 남한강 물이 반짝이는 곳에 대지 약 50만평 규모의 여유로운 자연섬으로 은행나무거리, 오솔길, 트레킹코스, 자전거 코스 등이 잘 조성돼 있어 서울 근교 여행지로 인기다.
여주쌀과 고구마 등 농특산물을 맛보고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여주오곡나루축제가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햇살 가득한 여주의 달콤한 추억’을 주제로 열린다. 경기도 10대 축제 및 대한민국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된 축제로 나루터, 나루께, 나루마당, 오곡거리 등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한 9개의 테마로 짜임새 있게 구성된다.
여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