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시정연설] 시위로 15분 늦게 시작… 野, 단 한 차례도 박수 안쳐

입력 2015-10-27 22:43
국회에서 27일 시정연설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 초반 미소를 띤 채 국정 전반에 대한 국회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성을 밝힌 연설 마지막 대목에서는 미소가 싹 가신 얼굴에 단호한 표정으로, 매우 대조적이다. 이동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취임 이후 3년 연속 국회 시정연설을 했다. 4대 부문 개혁과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 등 국정현안 전반에 대한 국회 협조를 요청하던 박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의지를 천명하는 대목에선 단호한 어조와 태도로 목소리 톤을 높였다.

박 대통령은 오전 9시41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짙은 회색 정장 차림으로 차에서 내린 박 대통령은 5부 요인 및 여야 지도부와의 비공개 환담을 위해 정의화 국회의장실로 향했다. 박 대통령은 이동 중 웃는 표정으로 “제가 늦은 것은 아니죠”라고 묻기도 했다.

오전 10시 예정됐던 시정연설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A4용지 인쇄물’ 침묵시위와 이를 만류하는 정 의장 간 의견 조율이 길어지면서 15분 늦게 시작됐다. 여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 오르자 일제히 일어나 박수로 맞았다. 야당 의원들은 기립은 했지만 박수는 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1만2200여자로 이뤄진 연설문을 약 42분간 낭독했다. 200자 원고지 기준 99쪽, A4용지 기준 13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연설문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경제’였다. 무려 56차례 경제를 언급했고, ‘청년(32회)’과 ‘개혁(31회)’ ‘일자리·국민(27회)’ ‘혁신(20회)’ 등이 뒤를 이었다.

박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연설 말미에 상대적으로 짧게 언급했다. 약 4분간 이어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대목에서 박 대통령은 ‘역사’라는 단어를 11번, ‘교과서’라는 단어를 4번 언급했다. 이 부분에서 여야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의 시선은 달라졌다. 살짝살짝 미소를 보이던 다른 대목 연설과 달리 강한 눈빛에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얼굴 표정에서 미소는 사라져 있었다.

국정화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돼 있었고, 목소리에서 떨림이 전해지기도 했다. 특히 ‘기본’ ‘대한민국’ ‘확고한 국가관’ ‘자부심’ ‘정통성’ 등 핵심 단어들을 또박또박 강조해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연설문 작성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정국 최대 이슈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관련해 국회에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직접 심혈을 기울여 원고를 작성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했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 직전까지 연설문 수정과 첨삭 등의 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관련해 정부·여당과 야당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의 태도는 크게 엇갈렸다. 여당 의석에서는 박 대통령의 입장과 퇴장을 포함해 모두 56차례 박수가 나왔다. 반면 야당 의석에선 연설 도중 단 한 차례의 박수도 나오지 않았다. 새정치연합 비주류인 조경태 의원만 박 대통령 퇴장 때 박수를 쳤다.

시정연설에 앞서 박 대통령은 5부 요인·여야 지도부와 환담했다. 이 자리에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교육부 교과서 태스크포스(TF)’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교육부에서 확실한 내용을 밝힌다고 들었다. 자세하게 어떻게 된 일인지…”라고 언급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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