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아들 재국이의 병명을 처음 들었을 때 배종훈(50)씨는 주저앉았다. ‘근이영양증’. 이름도 생소한 이 병에 걸리면 근육섬유가 괴사와 재생을 반복하면서 온몸의 근육이 사라진다. 의사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며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심장까지 확대돼 결국 스무 살 즈음에 사망할 것이라고 했다. 배씨는 고작 열 살에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들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이미 자녀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한 터였다. 맏딸 은비는 뇌종양인 ‘두개인두종’ 진단을 받아 수술했고, 막내딸 예림이는 얼굴 골격이 기형으로 형성되는 ‘반안면왜소증’을 갖고 태어났다.
악재가 겹쳐 서울에서 운영하던 신발공장이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다. 배씨 부부는 신변을 정리하고 자녀들과 대전으로 내려갔다. 재국이의 병은 점차 악화돼 매일 밤 다리가 아프다며 울었고 숨을 쉬는 것도 힘겨워 했다. 병원을 찾는 일이 일상이 됐다. 아들을 돌봐야 하기에 시간을 들여 일을 할 수도 없었다. 2007년 1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삶에 활력이 없었죠. 재국이가 희망을 잃고 제가 모든 것을 포기해버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배씨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의외의 제안을 했다. “늘 집에만 있어 답답하다며 넓은 세상이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재국이와 저, 둘 다 활로가 필요했습니다. 그 순간 ‘이거다’ 싶었죠.”
동네 산책을 시작으로 점차 활동량을 늘린 두 사람은 2007년 6월 국토종단에 참여했다. 부산역에서 서울광장까지 장장 600여㎞였다. “무모하다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겁이 났죠. 하지만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무척 행복해 했거든요.”
두 사람은 24일 간 걸으며 무사히 국토종단을 마쳤다. “아들과 함께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희망을 잃지 말자’고 서로를 응원했습니다.”
도전은 지속됐다. 2009년에는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670㎞, 2010년에는 대전에서 포항까지 273㎞를 걸었다. 2011년에는 제주도 해안도로 280㎞를 도보로 일주했고, 2013년에는 경북 포항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450㎞ 거리를 걸었다.
도전은 걷기에만 머물지 않았다. “재국이가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다고 했어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전하고 싶다면서요. 휠체어를 밀면서 뛰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지만 아들을 위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틈틈이 연습을 한 끝에 2012년 9월 대전에서 열린 하프마라톤에 재국이와 함께 참가해 1시간57분의 기록을 냈다. 이후 재국이와 함께하는 도전은 계속됐다. 충남 공주와 경북 경주 등에서 열린 국내 주요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완주했다. 지난 25일에는 춘천마라톤대회에 참가해 42.195㎞를 달렸다. 기록은 4시간31분.
배씨 부자는 다음달 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아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배씨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다. 당초 뉴욕마라톤에는 장애인이 혼자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참가할 수는 있지만 누군가 휠체어를 밀거나 당기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어 참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배씨 부자의 사연을 접한 대전지역 국회의원들과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 등이 뉴욕마라톤 조직위에 서한을 전달하며 설득에 나섰다. 주최 측은 논의 끝에 장애인 본인과 보호자가 함께 뛰는 ‘Duo/Pusher’ 전형을 신설하고 지난 9월 두 사람의 참가신청을 승인하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배씨의 각오는 각별하다. “재국이가 올해 스무 살이 됐어요. 근육은 더 빨리 굳어가고 호흡기에 의지하는 시간도 늘었죠.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도전이기에 더욱 최선을 다해 뛰겠습니다.”
도전을 응원하는 손길도 줄을 잇고 있다. 배씨가 출석하는 남대전성결교회 성도들은 특별기도회를 열어 이들의 건강과 도전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은 마라톤용 휠체어 제작 등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다(02-2078-7000·worldvision.or.kr).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미션&피플] 휠체어 아들과 마라톤 참가 배종훈씨… 난치병 딛고 父子 함께 뉴욕 마라톤 도전
입력 2015-10-27 19:39 수정 2015-10-27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