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금융 당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은행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비 올 때 우산 뺏기 식’ 영업을 피하면서 한계기업 솎아내기에 힘써야 하는 상황에서 당국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행간을 읽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시중은행장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확한 옥석 가리기’를 통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한계기업을 신속하게 정리함으로써 자원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선순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해 충분한 충당금 적립도 당부했다.
앞서 수차례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 등을 불러 신속한 기업구조조정에 압박을 가한 진 원장 발언이 정점을 찍은 모양새다.
정부의 한계기업 퇴출 드라이브에 은행들은 이미 기업들에 대해 신용위험평가를 하는 한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현장에서 한계기업을 걸러내는 데 걸림돌이 되는 성과평가(KPI)를 수정하고 있다. 한계기업을 정리했을 때 성과가 나쁠 수 있어 영업점 직원들은 한계기업 솎아내기에 소극적이었다.
금융 당국 지침은 따르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엄격한 기준으로 기업을 걸러냈을 때 ‘우산 뺏기’에 나섰다는 뭇매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진 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부 금융사들이 일시적 유동성 애로를 겪고 있는 정상 기업에 대해서도 경쟁적으로 여신을 회수하는 ‘비 올 때 우산 뺏기 식’ 영업을 한다”고 지적했다. 부실기업은 속히 정리하고 정상 기업의 돈줄은 죄지 말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으나 대부분 은행은 ‘구조조정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통상 한계기업은 3년째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다만 각 산업의 특성과 기업 개별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무 자르듯 한계기업을 모두 잘라내기는 어렵다.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금융 당국 발언이 추가로 나올 때마다 긴장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기업금융 담당자는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정리하는 게 원칙적으로 맞다”면서 “정부가 창조금융을 내세우면서 이전에는 기업대출을 늘리라고 해놓고 지금은 구조조정을 확실히 하라고 하니 은행 입장에선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기업구조조정이 한계기업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박기홍 연구위원은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좀비기업, 한계기업이 테마로 부각되고 있는데 이 틀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한계기업을 정해놓고 금융지원을 막을 것이 아니라 업종별로 경영환경에 맞춰 다양한 구조조정 전략을 세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체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최근 부실이 큰 조선·해운·건설업종의 대기업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더 맞는 방향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은애 백상진 기자
‘좀비기업 퇴출’ 헷갈리는 당국 사인 은행들 “어느 장단에 춤추라고”
입력 2015-10-27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