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무력 충돌 일보 직전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인공섬 12해리(약 22.2㎞) 안으로 구축함을 통과시킨 것은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정면으로 묵살한 것이다. 인공섬과 주변 해역을 중국의 영해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은 미 해군의 구축함이 진입하기 직전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는 등 일촉즉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중국의 영유권 주장 묵살=미 해군 구축함이 남중국해의 중국 인공섬 근해로 진입한 것은 국제법에 규정된 공해상 ‘항행(航行)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다. 항행의 자유를 행사한다는 것은 그 해역이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해상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는 곧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다.
설령 중국이 주장하는 영해권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번 미군 함정 통과는 국제법에 명시된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논리다. 무해통항권은 연안국의 평화와 질서, 안전을 해치지 않는 한 타국의 영해를 통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리킨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미국은 항행의 자유와 통상 흐름의 자유라는 기본 원칙을 사수하고,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제법에 의해 분쟁을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군사전문가 브라이언 클라크는 군사매체 네이비타임스에 “미국이 인공섬 12해리 해역에 대한 권리를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이는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묵인하는 셈이 된다”며 “또 설사 그곳이 중국의 영해라고 해도 미국은 무해통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도 무해통항권을 근거로 지난달 초 미국 알래스카에서 12해리 이내인 알류샨 열도 근처에 자국 군함을 통과시킨 바 있다.
중국이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주변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을 빚어왔지만 미국과 긴장이 특히 고조된 것은 지난해 인공섬 건설 이후부터다.
중국이 주변국의 반발에도 임의로 인공섬을 짓고 국제법상 영해로 간주되는 섬 주변 12해리를 중국의 영해라고 주장하자 미국이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함을 통과시킨 것이다.
◇잦아지는 미·중의 해상시위=미국 정부는 이번 인공섬 근해 진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진입작전은 앞으로도 수 주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으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미 해군의 인공섬 12해리 이내 진입을 바라만 보자니 영유권 주장이 무색해지고, 진입을 막자니 무력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 중국은 미군의 군함 파견 방침이 전해진 후 남중국해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 등을 벌였다. 미 해군의 구축함이 인공섬 해역을 통과하자 직접적인 군사행동은 자제했다.
두 나라의 해상 시위는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미군 정찰기와 함정이 난사군도(스프래틀리 군도)에 접근하자 중국 해군이 12해리 안으로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미 정찰기 P8-A 포세이돈이 인공섬 가까이 다가오자 중국 해군은 정찰기 조종사와 교신하며 여덟 차례나 12해리 안으로 침범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같은 달 미 해군의 연안전투함 ‘USS포트워스’호가 스프래틀리 군도를 지날 무렵에는 중국 함정이 여러 차례 출동해 서로 맞닥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에는 미국이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12해리 안으로 진입하지는 않았다.
중국은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알래스카를 방문할 당시 알류샨 알래스카 앞바다에 함정을 파견해 미국을 당혹스럽게 했었다.
미국은 2013년 동중국해에서 중국이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고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마찰을 빚자 B-52 폭격기 2대를 출동시킨 적이 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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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남중국해 일촉즉발 대치
입력 2015-10-27 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