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복실] 동네를 묻지 마세요

입력 2015-10-27 17:52

지난주에 후배를 만났더니, 최근에 이사한 사연을 들려준다. 그 후배는 서울 변두리 동네에 살았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친정 근처에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후배가 많이 듣지만 대답하기 거북한 질문은 “어느 동네에 사느냐?”였다. 매번 듣는 답변은 “둘이 맞벌이도 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는데, 왜 그런 동네에 사느냐”였기 때문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결국에는 이런 저런 사유로 강남 쪽으로 전세를 얻어 이사했다는 이야기였다.

이제는 사람들이 어느 동네에 사느냐고 물어도 아무렇지 않게 답변할 수 있어서 홀가분해진 마음의 변화에 본인 스스로도 놀라곤 한단다. 후배는 강조한다. ‘어느 동네에 사느냐’를 가지고 판단하지 말자. 가장 쉽게 보이는 것이 사는 동네이니 다들 쉽게 물어보고 쉽게 사는 형편을 판단하곤 한다.

동네도 마찬가지이고 옷을 비롯한 외양도 마찬가지이다. 옷을 잘 차려입고 가야 구매력을 지닌 고객으로 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한두 번 듣고 겪은 이야기가 아니다. 다들 외면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점 더 보이는 것들에 대한 소비만 늘어나는 사회가 된다.

어디 사느냐가 성공의 척도처럼 여겨지는 요즈음 시대에 우리 딸들이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면 나도 무심코 “그 아이 어느 동네에 사니?” 하고 첫 질문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다가는 당나라 때 쓰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고사성어에 이제는 지(地)를 추가해 신언서지판(身言書地判)해야 될 판이다. 사는 동네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로 써서는 안 될 것이다.

몇 달 전인가, 이런 뉴스를 봤다. ‘가난한 동네 빨리 죽고 부자 동네 오래 산다’는 제목인데 서울시에서 ‘통계로 본 시민건강 격차’를 보도한 기사였다. 지역 간 재정력 격차로 인해 1인당 보건서비스 예산 차이가 벌어지면서 그런 현상이 확대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 격차 때문에 마음이 상한 사람들에게 그런 보도는 지역에 대한 편견을 키우는 격이다. 앞으로는 행정기관에서 통계를 발표할 때는 대안도 함께 내놓을 것을 권하고 싶다.

지역 격차 문제는 어느 사회나 숙제이다. 지역 격차가 불러온 사회 혼란의 사례는 외국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그러한 일을 겪기 전에 우리도 미리미리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키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2005년 프랑스 파리 외곽 슬럼가에 살던 예전 식민지 출신 청년들이 일으켰던 도시폭동도, 2011년 영국 토트넘시의 소요 사태도 이를 말해준다.

이 문제에 대한 개선 사례도 있기는 하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 독일의 경우도 통독 이후 동·서 베를린 내의 지역 격차가 큰 사회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동베를린의 낙후된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니 건물과 거리가 변했다. 그런 과정에서 예쁘고 개성 있는 갤러리와 맛있는 레스토랑이 늘어나니 관광객이 저절로 모이는 베를린의 명물 거리로 거듭났다. 이제는 오히려 서베를린의 오래된 관광과 쇼핑 지역인 쿠담 거리가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서울을 다니다 보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리들이 있지만 앞으로 30년 후 어떤 명소로 변화될지 기대해보자.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강남 3구가 아닌 ‘강남 4구 만들기’ 슬로건으로 재기에 당당하게 성공한 인기 여성 정치인의 프로젝트도 궁금해진다. 사는 동네가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는 시대가 사라지길 우리 모두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복실(숙명여대 초빙교수·전 여성가족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