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현금 없는 사회’ 왔다

입력 2015-10-26 21:11

프랑스는 1000유로(약 125만원)가 넘는 고가 물품은 현금으로 결제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지난달부터 시행했다. 벨기에(5000유로), 스페인(2500유로) 등 유럽 주요국들도 현금결제 상한선을 두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는 현금을 최대한 줄이려는 정책 의도가 담겨 있다.

현금이 사라지는 모습은 유럽의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물 한 병을 살 때 현금보다 신용카드를 먼저 꺼내고, 밥을 먹거나 물건을 산 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결제하는 모습이 익숙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계좌이체나 카드 등 비현금 지급 결제액은 하루 평균 338조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 늘었다. 이런 ‘현금 없는 사회’가 소비 패턴을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경제 시스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핀테크(금융+IT) 활성화로 결제 환경이 급변하는 시점에 맞춰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과도 맥이 닿아 있다.

여신금융연구소 이효찬 실장은 26일 ‘현금 없는 사회는 왜 필요한가’ 보고서에서 “비현금화 정책은 경제 각 부문의 비효율성을 제거해 경제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며 “비현금 지급결제 인프라가 상당 부분 구축된 만큼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제도개선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금 없는 사회’는 지하경제를 줄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비현금 거래는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 보고서를 보면 현금결제 비중이 50% 이하인 국가들의 지하경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12%인 반면 현금결제 비중이 80% 이상인 국가들의 지하경제 비중은 평균 32%로 나타났다. 소비를 늘리고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2008∼2012년 56개국을 조사해보니 카드 보급이 대상국의 GDP를 연평균 0.17% 포인트 늘린 것으로 분석됐다.

마스터카드 분석을 보면 한국의 비현금 결제 비중은 70%로 높은 편이지만 비현금화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준비 점수는 69점(100점 만점)으로 낮았다. 여신금융연구소는 이런 불균형이 한국의 높은 지하경제 비중(GDP 대비 약 25%)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현금결제를 선호하는 자영업자들이 많고, 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이 줄어드는 경향이 걸림돌로 분석됐다.

반대로 모든 거래를 금융 시스템에서 파악하는 건 개인 금융정보를 침해할 소지가 있고 국가 통제가 강화되는 데 따르는 우려를 키울 수 있다. 금융보안 기술 투자도 늘려야 한다. 이 실장은 “현금 없는 사회를 앞당기려면 범국가적 협의체를 구성해 경제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