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난민 바람에 유럽 ‘右’로 눕다
입력 2015-10-26 22:14
난민 위기가 계속되면서 유럽 전역이 반(反)이민 정서로 물들고 있다. 각국 선거에서 ‘난민·유럽연합(EU) 반대’를 표방하는 우파나 극우 정당들의 승전보가 계속되는 가운데 25일(현지시간) 폴란드 총선에서도 난민 수용에 반대해 온 보수 성향 법과정의당(PiS)이 압승을 거뒀다. 통제 불가능한 난민 행렬 앞에 솅겐조약(국가 간 자유이동 합의)뿐 아니라 ‘하나의 유럽’이라는 가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날 종료된 폴란드 총선 출구조사 결과 법과정의당은 집권당인 중도 성향의 시민강령(PO)을 누르고 8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법과정의당은 특히 의석 460석 중 242석을 확보해 133석에 그친 시민강령을 압도하면서 1989년 폴란드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게 될 전망이다.
법과정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첨예한 쟁점으로 부각된 난민 사태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당대표는 현 정부가 난민 7000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데 강력히 반발해 “난민이 유럽에 질병을 가져올 수 있다”고 누차 주장했다.
영국 BBC는 “친EU 성향의 시민강령 집권 8년간 경제성장과 정치적 안정을 이뤘지만 경제 성장을 체감하지 못한 많은 폴란드인이 우파로 전향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불만을 바탕으로 법과정의당은 지난 5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도 극우 성향의 안드레이 두다(43)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바 있다.
이번 승리와 함께 총리 후보로 지명된 베아타 쉬드워(52)는 5월 대선 당시 정치 신인 두다 후보의 승리를 이끌며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광부의 딸이자 두 아들의 엄마’라는 점을 어필해 대중적 인기를 얻은 쉬드워는 결혼 후 35살의 나이로 고향인 광산마을 브체슈체에서 시장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이번 선거에서는 세금 인하와 복지 증대를 공약으로 내거는 등 유연한 행보와 능수능란함을 갖춰 투쟁적 지도자인 카친스키 대표에 비해 온건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쉬드워 역시 난민 사태에 관해서는 EU의 난민 강제 할당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또한 국제정치 측면에서 “독일과 EU에 대한 불신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에 더 많은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당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이원집정부제로 대통령이 명목상의 국가원수지만 총리가 실질적인 정치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폴란드 정치 지형에서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의회까지 완벽하게 장악한 법과정의당은 그간 견지해 온 강경한 반이민·반EU·반독일 경향을 강화하는 강력한 정책드라이브를 예고하고 있다. 폴란드 과학아카데미의 라도스와프 마르콥스키 교수는 가디언에 “법과정의당의 단독 집권으로 폴란드는 또 다른 헝가리가 될 것”이라며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집권 이후 극우 폐쇄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헝가리의 전철이 폴란드에서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폴란드 총선마저 우파 정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이번 달 들어 유럽 각국에서 시행된 4번의 총선 및 지방선거는 극우·보수 바람이 좌파 정당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지난 4일 포르투갈 총선에서 집권 사회민주당 우파연정이 재집권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11일 오스트리아 지방선거에서는 극우 자유당이 수도 빈 시장선거에서 역대 최고득표를 기록하는 등 전반적으로 약진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민족주의 성향인 스위스국민당 역시 18일 시행된 스위스 총선에서 무난히 승리했다.
올해 들어 덴마크, 그리스 등 난민 위기의 직간접 영향권에 속한 국가들은 여지없이 극우·보수 정당의 선거 득세가 두드러졌다. 난민 태풍이 몰고 온 ‘유럽의 우경화’가 다음 달 1일과 12월 20일 각각 치러질 터키, 스페인 총선까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