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옛 국정 국사교과서는 공무원시험 필수 수험서”… ‘7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찾는 사람들

입력 2015-10-26 21:56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6)씨는 얼마 전에 중고거래사이트에서 제7차 교육과정 국정 국사 교과서를 샀다. 거래가격은 2만2000원. 김씨는 26일 “공무원시험 준비생 사이에서 이 교과서는 필수품”이라고 말했다.

2013년 절판된 이 교과서는 출판 당시 서점에서 판매된 가격이 2000원이었다. 불과 2년여 만에 값이 10배 이상 뛴 것이다. 그런데도 없어 못 판다. 중고거래가 활발하다 보니 복사본조차 2만원 이상에 팔리고 있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발행이 중단된 교과서가 ‘높은 몸값’을 받는 이유가 뭘까.

7차 교육과정의 국정 국사 교과서는 2002년 초판이 나왔다. 2006년에 일부 내용을 수정해 2판을 찍었고, 2012년까지 발행됐다. 당시 국사는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1학년이 공통으로 배우는 과목이었다. 학교에 따라서 국사를 2학년 때 필수과목으로 배우기도 했다. 교육부는 2010년 국사 과목을 한국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검정 교과서 체제로 전환했다. 2011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학생들은 검정 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웠다.

7차 국정 국사 교과서는 앞으로 교육부에서 국정 국사 교과서를 발행하기 전까지는 고등학교에서 사용된 마지막 국정 국사 교과서라는 꼬리표를 갖는다. 저작권자는 현재의 교육부인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편찬자는 국정도서편찬위원회다.

이 교과서는 아직도 여러 국가시험에서 이용되고 있다. 7·9급 공무원시험, 경찰공무원시험 등에서 ‘한국사’는 필수과목이다. 출제 내용은 대부분 7차 국정 국사 교과서를 바탕으로 한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의 하나로 여기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도 이 교과서 내용 위주로 문제가 출제된다. 행정고시는 자격요건으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급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시행기관은 국사편찬위다.

공무원 준비생들이 필수 도서로 꼽는 한 한국사 강사의 ‘합격 필기노트’의 경우 여러 가지 색깔로 중요 내용을 표시한다. 검은색은 기본 내용, 빨간색은 중요 내용, 파란색은 심화 내용인데 7차 국정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부분은 별도로 녹색이 칠해져 있을 정도다.

왜 이 교과서가 국가시험의 기본 자료가 되고 있을까. 엉뚱하게도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보다 기본 사실이 주로 서술된다는 점이 이 교과서의 최대 장점이다. 복수정답 시비 등이 일지 않도록 오로지 사실만 나열한 이 교과서를 바탕으로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다. 한 한국사 강사는 “최근 공무원시험의 한국사 문제 출제가 고교 국정 교과서에 철저히 기반하고 있다”며 “이런 경향은 문제 공개 이후 복수정답 시비로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오래전에 절판된 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옳을까. 전문가들은 역사를 배우는 의미를 잃게 된다고 꼬집는다. 각종 시험을 암기식으로 만들어 문제를 더 어렵게 내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김덕수 교수는 “기본적인 사건들을 암기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사실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냥 외우는 암기식 교육을 넘어서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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