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주고 싶어.”
이석주(98) 할아버지는 걸치고 있던 외투를 힘겹게 벗었다. 북에서 온 아들 동욱(70)씨가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을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검정 외투는 동욱씨에게 꼭 맞았다. 아버지는 아들한테 양복 한 벌을 맞춰줬지만 모자란 듯 외투까지 벗어 아들에게 내줬다.
남측 여동생 경숙(57)씨는 “오빠 멋있다”고 했다. 아버지 외투를 입은 동욱씨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오빠 옷 딱 맞아. 소매만 조금 줄이면 되겠어”라고 했다. 동욱씨가 “아버지, 잘 입겠수다”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목에 둘렀던 체크무늬 목도리마저 벗어 걸어줬다.
2차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인 26일, 금강산호텔 연회장에 모인 가족들은 차분한 표정으로 이별을 준비했다. 서로에게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나자”고, “그때까지 꼭 살아있으라”고 당부하며 언젠가 다시 찾아올 재회를 기약했다.
남측 최형진(95) 할아버지는 메모지를 꺼내들었다. ‘어머니한테 내가 왔다 가구, 또 미안하다고 꼬…’까지 쓰다 펜을 멈췄다. ‘꼭’을 쓰려고 했지만 눈물이 쏟아져 앞을 가렸다. 울음을 참아보려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치매 증세가 있어 전날부터 북측 아들 주재은(72)씨를 알아보지 못하던 김월순(93) 할머니는 또다시 옆자리 아들을 가리키며 “이건 누구요?”라고 물었다. 가족들끼리 대화가 오가던 중 김 할머니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왼쪽 손가락에서 반지 하나를 빼내 북측 아들에게 건넸다. 아들은 “괜찮아요. 안 필요해요”라고 했지만, 김 할머니는 “안 필요해도 내가 주고 싶어. 갖다 버리더라도 갖고 가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볼에 입을 맞췄다. “고마운 세상이야. 우리 재은이를 만나고….” 통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던 어머니가 ‘재은’이라는 이름을 또렷이 말하자 아들은 감동했다. “우리 어머니, 이제 정상이시네”라고 답했다.
오전 10시20분이 되자 상봉 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가족들이 오열하며 작별인사를 나눴지만 김 할머니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북으로 돌아가야 할 재은씨에게 “같이 안가?”라고 물었다. 재은씨는 울먹이며 “통일되면 만납시다. 어머니”라고 했다. 이 모습을 본 남측 아들 재희(71)씨는 다시 오열했다. “핏덩이를 (북에) 버리고 왔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잖아 엄마….” 하지만 어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듯 아들을 돌아보며 “나 데리고 집에 갈 거지?”라고 물었다.
버스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도 김 할머니는 손으로 창문만 톡톡 두드렸다. 갑자기 기억이 되살아난 듯 창밖에서 손을 흔드는 북측 가족들을 보며 눈물을 쏟았다. 북측 아들 재은씨는 두 손을 모아 하늘로 치켜들며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남측 박태욱(93) 할아버지는 상봉 후인 낮 12시30분쯤 금강산 온정각에서 아들과 산책을 하다 갑자기 쓰러져 머리를 다쳤다. 박 할아버지는 구급차로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과해 속초의료원에 이송됐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조성은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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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 “코트 주고 싶어”… 北 아들에 외투 벗어준 98세 아버지
입력 2015-10-26 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