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의 ‘아버지 리더십’ 축구 미생들 일깨우다

입력 2015-10-27 22:35

축구해설가 안정환은 오랫동안 그라운드의 ‘테리우스’였다. 잘생긴 국가대표 공격수라는 게 굳게 박혀 있는 이미지였다. 그런 그가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 전혀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얼마나 진지하게 축구를 했는지, 한 분야에서 성공적인 길을 걸으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은 축구 미생들의 재도전기를 그렸다. 지난 7월부터 24일 종영하기까지 4개월 동안 이들의 성장기를 다뤘다. 안정환은 기존 멘토들과 달랐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보단 가시 돋친 ‘독설’로 일관했다.

훈련에서 성과가 없는 한 선수를 붙잡고는 이렇게 다그친다. “요즘 세상이 그래. 두 번 기회는 안 줘. 네가 여기 나가서 회사를 다녀도 마찬가지고. 자신감은 다른 사람이 찾아줄 수도 있지만 본인이 찾아야 해. 누구도 널 도와주지 않아. 네가 이겨내야 해.”

축구만큼 경쟁이 치열한 스포츠도 없다. 안정환은 프로그램 감독제의를 수락하면서 “나처럼 어렵고 힘들게 운동한 선수들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그도 청춘FC에 모인 제자들처럼 한 때 부상으로 좌절하고, 일탈과 절망을 겪은 시절이 있었다.

제자들에게 막연한 위로나 희망을 건네는 것보다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우는 게 생존에 더 도움이 된다는 걸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독설은 더 진심으로 와 닿는다. 많은 시청자들이 청춘FC를 냉혹한 직장인의 현실을 그린 드라마 ‘미생’에 빗대 ‘축구 미생’으로 부르는 이유다.

독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안정환은 개인 면담을 신청해온 제자들에게 장난기 섞인 말을 건네며 위로하고 감싸 안기도 했다. 훈련 마지막 날에는 이들이 건네는 편지를 받아들며 “하루에 하나씩 읽어야겠다”고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지막회 촬영을 마친 안정환은 “선수들을 마음 따뜻하게 대해주고 싶었지만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더 몰아쳤어야 했다. 훨씬 가능성이 많은 선수들이다. 더욱 성장시켰어야 했는데 미안하다”며 “제자들이 좋아하는 축구로 먹고살기를 바란다”고 했다.문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