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스포츠계에 큰 족적을 남긴 두 분을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 분은 스포츠 행정 및 외교 분야에서 한국 스포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분이고, 다른 한 분은 경기장에서 국내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연승 기록을 세운 뒤 올해 현장에서 물러난 분이다. 눈치 빠른 스포츠팬이라면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겸 세계태권도연맹(WTF) 창설 총재와 신치용 전 삼성화재 감독임을 눈치 챘을 것이다.
김 전 총재는 80세를 훌쩍 넘은 고령임에도 여전히 한창때와 다름없는 기억력과 총기를 보이고 있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4년 9월 4일 파리 IOC 총회 당시 득표수는 물론 당시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코멘트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을 수차례 기사화했던 기자로서는 그의 기억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주미 대사관 참사관 근무 당시 비사를 얘기할 때는 눈에 빛이 났다.
신 전 감독은 20년간 삼성화재 배구 감독을 지내면서 실업리그와 프로배구를 포함해 19년 연속 팀을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프로배구에서는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다 기록인 7년 연속 우승 기록도 세웠다. 7개 팀 남자 프로배구 감독 중 6명이 그의 제자다.
두 분에 대한 얘기가 길어진 것은 성공담을 소개하거나 성공 비결을 배우자는 그런 뜻은 아니다. 여전히 현역의 삶을 이어가는 용기와 지혜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치열했던 승부의 세계를 살았던 자신의 삶을 진실로 사랑하고, 이제는 후진과 사회를 위한 봉사의 삶을 본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 사무실까지 열고 있는 김 전 총재는 여러 대학 특강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운용닷컴’을 운용하며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스포츠 정보를 후학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올해 환갑을 맞은 신 전 감독은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 배구단 단장 겸 제일기획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부사장으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신 단장은 모기업의 지원 없이도 생존 가능한 국내 프로 스포츠 팀의 수익 모델 창출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영웅은 많지만 우리는 영웅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이들을 존경하고 롤 모델로 삼는 데 인색한 게 우리네 못된 풍토다. 안타까운 것은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성공 사례와 지혜가 개인 차원으로 축소되고 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선 두 분은 체육에 관한한 앞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족적을 남겼다. 이들의 삶의 궤적은 우리 사회의 큰 자산이 될 가치가 충분하다. 두 분은 기자와의 만남에서 자신들이 여전히 가치 있는 현역임을 입증하듯 훌륭한 정책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김 전 총재는 일본이 최근 2020년 도쿄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위해 ‘스포츠청’을 만들었다며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학업 스트레스와 인터넷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을 위해 운동만한 것이 없다며 이를 담당할 ‘체육청소년부’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 전 감독은 승리 지상주의에 젖은 국내 스포츠 문화의 일대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신 전 감독은 삼성 소속 선수들에게 외국어 공부를 의무사항으로 집어넣겠다고 말했다. 운동을 그만둔 선수가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은 현역 시절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또 스포츠 현장에 ‘탈권위주의’ 문화 도입도 시급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들은 현장을 떠났어도 현역 때 이상의 지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었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돋을새김-서완석] 스포츠 영웅에게 배우는 지혜
입력 2015-10-26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