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연(98) 할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인 24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두 번째 단체상봉에서다. 100세를 바라보는 구 할아버지는 이어지는 상봉 일정에 지친 듯한 표정이었다. 아들 형서(42)씨가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이번에 보고 내일 짧게 보고 끝이야. 궁금한 거 좀 물어보고 손도 좀 잡고 계세요”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맏딸 송옥(72)씨가 아버지에게 다가와 손을 살짝 잡았다.
구 할아버지는 “고추를 팔아 신발을 사주겠다”고 했던 65년 전 약속을 지키려고 꽃신을 들고 금강산을 찾았다. 그는 오전 외금강호텔에서 열린 개별상봉 때 딸에게 꽃신을 전달했다. 하지만 두 딸 송옥, 선옥(68)씨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신발도 신어보지 않고 받은 옷도 입어보지 않았다. 대신 종이에 뭔가를 적어 아버지에게 전했지만 글씨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아들 강서(40)씨는 “외부 사람들을 많이 의식하는 것 같았다. 말을 조심스럽게 하더라”고 전했다. 송옥, 선옥씨는 전날 열린 상봉행사 때도 취재진이 접근하자 “가족끼리 만나는데 얘기도 못하게 왜 이러느냐” “저리 가라”며 경계했다.
북측 한송일(74)씨는 남에서 온 어머니 이금석(93) 할머니의 오른손을 붙잡고 연신 쓰다듬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사탕 봉지를 벗겨 서로의 입에 넣어주었다. 빛바랜 사진을 넘겨보며 옛 추억을 되새기는 동안에도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손목의 팔찌를 벗어 아들 손에 끼워줬지만, 아들은 “괜찮아”하며 다시 어머니 팔목에 돌려놨다.
4시간 전에 열린 오찬상봉까지만 해도 어머니와 아들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 할머니는 아들 한씨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한씨도 수저를 들면서 어머니가 신경 쓰여 음식을 넘기지 못하는 듯했다.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던 어머니는 “떡도 먹어봐라. 맛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숟가락에 밥을 담아 60여년 만에 만난 아들 입에 넣었다. 어머니가 떠주는 밥을 먹으며 아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와 아들 모두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이 할머니는 소감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기뻐요. 정말 기뻐요”라고 했다. 한씨에게 ‘어머니가 보고 싶었느냐’고 묻자 “어휴…” 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아들 한씨가 젓가락으로 오리고기 한 점을 집었다. 어머니가 씹기 좋도록 잘게 잘라 접시에 올렸다. 남측의 여동생 경자(72)씨에게도 음식을 덜어줬다. 이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눈물을 애써 참던 아들이 결국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아들은 새우를 한 마리 집어 껍데기를 벗겼다. 어머니도 아들에게 팥죽을 덜어줬다. 이목구비가 꼭 닮은 모자는 또 울음이 터질까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이어갔다.
구 할아버지와 함께 이번 상봉의 최고령자인 이석주(98) 할아버지는 공동중식과 단체상봉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피로감에 공동중식 행사만 불참하려 했지만 몸살기가 심해져 결국 오후 일정을 모두 포기했다. 공동중식 때는 아들 동진(61)씨가, 단체상봉 때는 딸 경숙(57)씨가 할아버지 곁을 지켰다.
이 할아버지의 빈 자리를 사이에 두고 남측 아들 동진씨와 북측 아들 동욱(70)씨는 두 손을 꼭 맞잡았다. 동진씨는 형에게 “제가 잘 할게요. 걱정 마세요. 항상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동욱씨는 “네가 어찌 됐든 그쪽에서는 장손이다. 아버지를 책임져라”고 당부했다. 공동중식 행사 때는 딸 경숙씨가 동욱씨에게 건배를 제안하며 “오빠, 만나서 반갑고 건강하세요”라고 했다. 북측의 조카 용진(41)씨도 “고모도 많이 드세요”라고 했다.
조성은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jse130801@kmib.co.kr
[관련기사 보기]
[2차 이산가족 상봉] ‘꽃신’ 약속지킨 98세 아버지, 아들에 사탕 주는 93세 노모…
입력 2015-10-25 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