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가족을 만나는 자리에서 불쑥불쑥 터져나오는 북측 가족들의 체제 선전과 북측 요원들의 간섭은 남측 가족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43년 전 납북됐던 오대양62호 선원 정건목(64)씨 아내 박미옥(58)씨는 남측의 시어머니 이복순(88)씨에게 수도 없이 “고생하는 거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정씨 여동생 정향(54)씨에게 “우리 당이 오빠를 조선노동당원 시켜주고, 공장 혁신자도 되(게 해주)고 아무런 걱정할 것 없다”고 자랑했다.
그는 북한에 있는 손자 돌 사진을 보여주며 “다 무상이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남조선이랑 다르다. 우리 남편이 남조선 출신이라고 차별받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에 끼어들어 앉은 박씨는 시어머니한테 “우리랑 같이 가서 살자”고도 했다.
송찬수(88) 할아버지의 북측 친조카 영택(35)씨는 “반세기가 지나서도 아직 못 만나고 있지 않습니까, 큰아버지. 미국 때문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숙(87)씨의 북측 손녀 김미영(43)씨는 “김정은 동지에게 정말 고맙다”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기도 했다. 이인숙(86)씨 북측 조카 최성국(40)씨와 고창백(93)씨 북측 손자 고영남(32)씨도 “위대한 원수님께 감사한다”며 울먹였다.
2회차 상봉 가족들은 20∼22일 치러진 1회차 상봉 때보다 취재를 더 부담스러워했다. 구상연(98)씨의 북측 두 딸은 남측 가족이 입장하기 전부터 기자들에게 “뭘 자꾸 물어보느냐. 누구 만나는지 모른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카메라 촬영이 계속되자 화를 내며 “가족끼리 만나는데 얘기도 못하게 왜 이러느냐.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봉진(82)씨가 북측 조카들을 만나는 자리에선 ‘안내’ 표시를 단 북한 남성들이 기자들에게 “시작부터 왜 이러느냐. 나중에 하라”고 제지하기도 했다.
정건목씨와 달리 아직도 남측 가족을 만나지 못한 납북자는 여전히 많다. 정부는 6·25전쟁 이후 납북된 사람이 5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가운데 생사가 확인된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93명에 불과하다. 이들 중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 때 1987년 서해 백령도 근해에서 북으로 끌려갔던 동진27호 갑판장 강희근씨가 어머니를 만난 걸 포함해 지금까지 단 35명만 가족을 만났다. 국군포로는 2000년부터 12명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최현수 군사전문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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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25 2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