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 건물 70代 할머니 치매 걸리자… 성년후견인이 되찾아 준 ‘치매 할머니 재산’

입력 2015-10-25 21:50

송모(43)씨는 2012년 3월 어머니 김모(72)씨가 실종됐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한 달 전부터 관절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김씨가 갑자기 종적을 감춰서였다. 어머니는 2007년부터 치매를 앓아 왔다. 경찰은 김씨가 자신의 막내 남동생, 즉 송씨의 외삼촌 집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외삼촌을 비롯한 친척들은 송씨와 어머니의 만남은 물론 전화통화도 막았다. 송씨는 김씨가 1972년 입양한 양아들이었다.

외가 친척들이 어머니의 재산을 처분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1년 정도 지나서였다. 김씨는 서울 종로구에 감정가 12억원짜리 5층 상가건물을 비롯해 여러 부동산과 예금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건물에서는 월 600만원가량 임대료 수익이 나고 있었다. 어머니는 막내 남동생 집에 머물던 2012년 5월 ‘모든 재산 관리를 동생에게 위임하고, 월세 중 400만원도 두 동생에게 지급한다’는 위임장을 썼다. 사후 전 재산을 두 동생에게 상속하고 송씨는 친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유산을 받을 수 없다는 유언장도 작성했다.

송씨는 2013년 6월 어머니를 금치산자로 인정해 달라는 심판을 법원에 청구했다. 상가건물에는 ‘건물주가 치매환자로서 부동산매매 및 대출계약은 법적으로 무효’라는 플래카드도 걸었다. 법원은 석 달 뒤 변호사를 김씨의 임시후견인으로 선임하고, 후견인의 동의 없이는 김씨 재산을 함부로 처분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김씨 동생은 결정문이 법원에서 송달된 당일 해당 건물을 황급히 처분하고 소유권 이전등기까지 마쳤다. 지인이 소유한 서울 동작구 한 편의점과 부동산을 맞바꾼 것이다. 이에 지난해 1월 김씨의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된 변호사가 ‘재산을 원상복구하라’며 소송을 냈다.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성년후견인 제도는 성년후견인이 사무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피후견인을 위해 법적으로 효력을 지니는 거의 모든 행위를 돕도록 하고 있다.

김씨의 후견인은 문제의 위임장이 의사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작성돼 이를 바탕으로 진행된 거래 전부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반면 부동산을 매수한 쪽에서는 위임장 작성 시 김씨가 정상과 치매의 경계에 있었고, 김씨가 직접 위임장에 한자로 서명을 했다고 맞섰다.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6부(부장판사 윤강열)는 “김씨가 작성한 위임장은 무효이며, 남동생은 사건 토지와 건물을 처분할 대리권이 없다”고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비록 김씨가 위임장에 서명했다 하더라도 치매로 인해 그 행위의 법률적 의미나 효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판단한 감정의의 소견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부동산을 급하게 매각한 점에 대해서도 “후견인 동의 없이는 재산 처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매매대금 등 반대급부를 받지도 않은 채 형식적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원 관계자는 “사후 법원이 선임한 후견인의 적극적 활동으로 치매환자의 상태를 악용해 임의처분한 재산을 회복한 사례”라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