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공방] ‘백년전쟁’, 법정 전쟁 끝낼까… 대법, 현대사 왜곡 등 상고심 심리 앞둬

입력 2015-10-25 22:04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비판적으로 다뤄 소송에 휩싸인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포스터.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계기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둘러싼 공과(功過) 논쟁이 한창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두 인물을 어떻게 평가해야 바른지의 문제는 사실 법조계도 수년째 고민하는 이슈였다. 둘을 비판적으로 다룬 민족문제연구소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행정소송과 수사의 대상이 되면서부터다.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 RTV에 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명령은 취소 청구소송 1·2심을 거쳐 대법원 심리를 앞두고 있다. 또 이 전 대통령의 후손이 그 제작자들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법원의 판단은 이 다큐멘터리가 일방적으로 두 인물을 폄하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역사학계에 객관성 검증을 의뢰한 상태인데, 학계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백년전쟁’의 법리전쟁=‘백년전쟁’의 왜곡 여부에 대한 판단은 결국 대법원까지 왔다. 대법원은 방심위의 ‘백년전쟁’ 중징계에 대한 행정 제재명령 취소 청구소송과 관련해 상고심 심리를 개시했다고 25일 밝혔다. 주심을 김신 대법관으로 지정해 RTV 측 상고이유서와 방심위의 답변서 등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심위가 ‘백년전쟁’의 공정성과 객관성, 명예훼손 문제를 지적하며 벌점 5점의 중징계를 내린 지 2년3개월 만이다.

‘백년전쟁’은 ‘두 얼굴의 이승만’과 ‘프레이저 보고서 제1부’라는 부제로 두 편이 제작돼 2012년 11월부터 시청자들에게 공개됐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독립운동가를 밀고했다는 등 친일행적을 부각했고, 여대생과 부도덕한 일을 저질러 미국 수사 당국에 기소됐다는 내용까지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스네이크 박’이란 별칭이 있었다며 그가 미국에 굴종해 한국 경제성장의 업적을 가로챘다는 내용을 다뤘다.

방심위는 평가의 근거 자료가 편향됐다며 ‘사실 왜곡’이라고 단정해 관계자들을 징계했다. RTV는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8월에 이어 지난 7월 항소심에서도 패했다. 재판부는 “의혹을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편집하거나 재구성했다”고 판시했다.

◇명예훼손 수사, 어디까지=이 전 대통령을 ‘A급 민족반역자’ ‘플레이보이’ ‘하와이 깡패’ 등으로 그린 부분은 사자명예훼손 시비까지 낳았다. 이 전 대통령의 양아들인 이인수(85)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이사는 2013년 5월 ‘백년전쟁’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통상의 명예훼손 사건과 달리 형사부가 아닌 공안부에 배당됐고, 이는 시민사회에서 또 다른 논쟁을 낳았다.

검찰은 이후 방송제작 PD를 수차례 소환 조사했고, 이메일 압수수색도 벌였다. 검찰은 ‘백년전쟁’이 지난 대선을 앞둔 시기에 방송되도록 무리하게 제작됐을 가능성도 강하게 의심했다. 검찰은 제작 의도성을 분석하는 한편 역사학계에 객관성 ‘감정’을 의뢰했다. 명백한 허위사실이 있는 경우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데 보강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백재명)가 물려받아 계속 수사 중이다. 역사학계에 의뢰한 객관성 평가 결과는 아직 회신되지 않은 상태다. 검찰이 의뢰한 역사학계 가운데 한 곳은 한국현대사학회로 알려졌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승만을 비판한 역사다큐에 대한 평가를 이승만 우상화 주도세력에 맡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