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여객기가 격추된 직후인 1983년 11월 미국과 소련은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맞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핵전쟁 가상훈련을 벌이자 이를 미국의 실제 핵 공격으로 오해한 소련 지도부가 ‘공포’에 빠지면서 폴란드 소재 공군기지에 핵무기 탑재 시간을 단축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전군에 전투태세를 명령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5년 만에 해제된 기밀문건을 인용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1990년 2월 15일 미국 대통령 해외정보자문위원회 앞으로 작성된 ‘소련의 전쟁공포’라는 제목의 109쪽짜리 보고서는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을 냉전시기에 미국과 소련 사이 긴장이 가장 고조된 사건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1983년 9월 1일 승객 240명과 승무원 29명을 태우고 뉴욕 JFK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가던 KAL 007편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공군의 요격으로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나토는 이 사건 2개월 후 중거리탄도미사일(퍼싱Ⅱ)과 크루즈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고 영국과 터키에 이르는 유럽 전역에서 핵전쟁 가상훈련(작전명 ‘유능한 궁수’)을 벌였다. 가짜 핵탄두를 탑재한 항공기가 격납고를 빠져나가는 훈련도 포함됐다.
소련 지도부는 이 훈련을 실제 핵 공격으로 의심하고 과도한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11월 4일부터 10일까지 1주일 동안 동독과 폴란드 기지에 있던 모든 전투기의 훈련이 중단됐다. 전쟁이 벌어지면 곧바로 출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폴란드 소재 소련 공군기지에는 핵무기 탑재에 걸리는 시간을 1기당 25분으로 단축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일부 소련 부대는 나토에 대한 선제공격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소련 지도부는 1981년 이후 소련의 핵 보유 전력이 미국 핵 전력의 45% 미만으로 떨어지자 불안에 떨었다. 미국의 공습 가능성을 경고하는 내용이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하루에도 수차례씩 전파를 타고, 방공대피소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됐다. 특히 1983년 5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지칭하고 KAL기 격추 사건을 계기로 나토가 핵전쟁 훈련을 벌이자 소련 지도부는 공포를 느끼고 선제공격을 준비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소련 공산당 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의 지병이 악화되고 이듬해인 1984년 2월 그가 사망하면서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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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KAL機 피격 직후 美·蘇 ‘핵전쟁’ 일촉즉발”… 25년 만에 해제된 美 기밀문서
입력 2015-10-25 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