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공방] “마녀사냥 우려” vs “밀실작업 예고”… 집필진 공개 여부 논란

입력 2015-10-25 22:02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집필 거부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필자 ‘구인난’에 내몰리자 고육책을 집어 든 것이다. 국정 교과서 논쟁은 이제 ‘밀실 교과서’ 논란으로 번지게 됐다.

교육부는 반대 진영의 ‘집필진 공격’ 우려를 명분으로 들고 나왔다. 집필 과정에는 필진을 공개하지 않고 교과서 윤곽이 잡힌 뒤 밝히겠다는 것이다. 국정 교과서 편찬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하겠다던 당초 입장에서 크게 후퇴했다.

역사학계 등의 반발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 등 한국학을 연구하는 해외 석학들도 국정화 반대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교육부 관계자는 25일 “교과서 집필에 들어가기 전에 집필진 명단이 공개될 경우 ‘마녀사냥’ ‘신상 털기’식 공격이 예상된다”며 “무분별한 흠집 내기로 교과서 제작에 지장을 초래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사전에 공개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교과서가 나오면 필진 명단은 어떻게든 공개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일단 집필위원회 위원장만을 공개하고 나머지 인원은 비공개하는 방안 등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기존 입장을 사실상 뒤집는 방식이다. 교육부는 국정화 행정예고를 했던 지난 12일 “집필에서 발행까지 교과서 개발 과정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운영한다”고 밝혔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도 국정화 발표 당시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온 국민이 ‘아, 이러이러한 분이 이러한 절차에 따라서 집필에 참여하시게 되었구나’ 하도록 투명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에서는 “개인적으로는 (집필진 명단을 공개)하고 싶지만 집필진이 ‘안 된다’고 하면 저도 따라야 한다”며 비공개 가능성을 내비쳤다.

역사학회, 대학, 중·고교로 집필 거부 움직임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권위 있는 필자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비공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인물이 필진에 포함됐을 경우 비난 여론이 들끓을 가능성이 높다. 교과서 내용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보려는 의도란 해석도 나온다.

해외 대학에서 한국사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저명한 학자들이 25일 국정화 반대 성명을 냈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를 비롯해 존 트릿 예일대 교수, 로스킹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 윤성주 칼던대학 교수, 김선주 하버드대 교수 등 154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국정화는 민주국가로서 인정받은 한국의 국제적 명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고,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 분쟁에서 한국의 도덕적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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