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治水가 길이다] 곳곳에 ‘물 샐 틈’… 물 한 컵 정수에 서너 컵 버린다

입력 2015-10-25 21:06 수정 2015-10-25 21:12

“사상 최악의 가뭄이라는데 피부로 느껴지는 건 없어요.”

서울에 사는 김모(27)씨는 일상생활에서 ‘물 부족’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했다. 집은 물론이고 시내 어디에 가도 쉽게 수돗물을 펑펑 쓸 수 있어서 그렇다. 신문과 방송에선 최악의 가뭄에 농사짓기도 힘들 정도라는데 그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최근 충남 서북부 지역에서는 식수까지 부족해 제한급수를 실시했다. 하지만 가뭄 피해를 느끼지 못하는 시민들은 여전히 물을 ‘물 쓰듯’ 쓰고 있다.



‘물 스트레스’ 국가,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가용 수자원 대비 물 수요 비율이 40%를 넘는 ‘물 스트레스 국가’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물과 미래’ 보고서에서 5년 주기로 가뭄이 찾아올 때 1.6억㎥의 물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 국민이 열흘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에 버금가는 양이다. 과거 가장 심했던 가뭄을 기준으로 할 때 2020년 물 부족 예상량은 4.6억㎥인데,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물 부족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물 사용량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물을 쓰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국민 1인당 하루 수돗물 사용량을 335ℓ(2013년 기준)로 집계했다. 스페인은 우리의 절반 수준인 176ℓ를 소비하고, 스위스도 288ℓ 정도만 쓴다. 일본 이탈리아 등도 우리보다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50 환경전망 보고서’를 보면 OECD 회원국 중 물 스트레스 지수가 40%를 넘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정용수로 쓰이는 물이 상당히 많다. 사용가능한 물 중 약 40%를 생활용수로 쓰고 있다. 1인당 하루 193ℓ를 화장실·부엌 등 집에서 사용한다. 중국은 150ℓ, 영국은 163ℓ 정도에 그친다. 설거지나 목욕 등을 할 때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은 물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농업용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생활용수에서 물 사용량을 줄여야 물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른 나라보다 연평균 강수량이 많은 편인데도 물이 부족한 데는 이유가 있다. 면적에 비해 높은 인구밀도와 계절별로 차이가 큰 강수량 때문이다.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은 1274㎜로 세계 평균의 1.6배에 달한다. 하지만 이를 인구로 나누면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수자원량은 세계 평균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10년 뒤 인구 증가율이 최저 수준에 그친다고 가정해도 가용 수자원은 지금보다 줄어든다.

더욱이 우리나라 수자원의 74%는 홍수기에 편중돼 있다. 가뭄 때에는 이용할 수 있는 수자원량이 기존의 45% 수준까지 떨어진다. 올해처럼 가뭄이 심할 경우 물 부족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이다. 이 같이 근본적인 물 부족 원인에 더해 생활 속 물 이용량까지 계속 늘어난다면 ‘물 스트레스 국가’에서 ‘물 기근 국가’로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물 샐 틈’이 너무 많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낭비되는 물의 양은 상당하다. 가정용이나 상업용 정수기의 경우 먹는 물보다 버리는 물이 더 많아 물 낭비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역삼투압 정수기의 물 회수율은 30%에 불과해 물 한 컵을 정수하기 위해 서너 컵의 물을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정수기를 사용하는 국내 가정의 절반 정도는 역삼투압 정수기를 쓰고 있다. 습관적으로 정수기 물을 마시면서 그 몇 배의 물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가정용수 중 25%가량이 변기 물로 쓰인다. 싱크대나 세탁기에 쓰이는 물보다 많다. 수세식 변기는 한 번 물을 내릴 때 8∼15ℓ의 물을 흘려보낸다. 하루에 한 사람이 평균 50ℓ의 물을 사용하는 셈이다. 4인 가족이 변기로 흘려보내는 물은 중형 냉장고 크기만 한 양이다. 물탱크 안에 벽돌을 넣거나 절수형 변기를 사용하면 사용량을 줄일 수 있지만 이를 실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목욕과 세면에 쓰이는 물도 쉽게 낭비된다. 칫솔질을 하며 30초만 물을 틀어놔도 6ℓ의 물이 그대로 흘러간다. 아침에 세면대를 사용한 뒤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아 저녁까지 물이 졸졸 나왔을 경우 100ℓ가 사라진다. 15분 샤워에 물을 180ℓ 정도 쓰는데, 샤워 시간을 5분만 단축해도 물 60ℓ를 아낄 수 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25일 “대부분의 시민들이 물 절약 방법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실천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일상에서 낭비되는 물이 상당한 만큼 의식적으로 물을 아끼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심희정 김판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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