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혁상] 박 대통령, 유연하되 단호하게

입력 2015-10-25 18:07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첫 한·일 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큰 변수가 없다면 1주일 뒤 박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마주 앉게 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아베 총리와 회담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른 한·미·일 3자 정상회담 차원이었다. 사실상 마지못해 얼굴을 맞댄 격이다. 특히 한·일 정상이 상대국에서 만나는 것은 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일본에서 회담한 이후 4년 만이다. 그런 만큼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역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그 함의가 클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박근혜정부와 아베 정권에서의 한·일 관계 출발점은 그동안의 역대 정부와는 달랐다. 과거 우리 대통령들은 취임 초 한·일 관계 개선에 중점을 뒀다. 이는 정권 초기 양국 관계의 좋은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임기 후반을 지나면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적 태도로 반일 정서가 다시 짙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김영삼(YS) 대통령 첫해인 1993년 일본의 ‘고노 담화’ 발표 등으로 양국 관계엔 순풍이 불었지만 3년 뒤 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른 망언에 YS가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을 정도로 관계는 악화됐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첫해 역시 한·일 양국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천명할 정도로 가까웠지만 후반기엔 관계 악화가 재연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양국 관계 개선을 주요 대외 과제로 잡고 개선을 시도한 탓에 초기에는 양국 교류 협력이 ‘반짝’ 활성화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2012년 8월 이 대통령의 독도 전격 방문으로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2013년 초 박근혜정부가 출범 당시 목표로 내건 한·일 관계의 지향점은 ‘안정적인 양국 관계 발전’이었다. 하지만 첫해부터 이어진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잇따른 망언 등으로 한·일 관계는 그동안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질 수 없었다. 박 대통령도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한·일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는 사이 전통적인 한·미·일 3각 안보 공조를 중시해 왔던 미국은 이런 우리 정부의 스탠스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응하면서 양자 관계 개선에 압박을 해 왔다. 지난해 한·미·일 3국 정상회담도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박근혜정부 출범 2년 반이 지난 지금 상황은 변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올해 박 대통령은 보다 유연한 대외 기조로 선회할 것을 천명했다. 사실 박 대통령의 이런 대일 기조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크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강조해 왔던 아시아 패러독스(asia paradox) 해소,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이행을 위해서라도 한·일 관계의 정상화는 반드시 필요했다. 북핵 공조나 군사협력 등 이슈에서도 일본은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문제는 2년 반 넘게 냉소적인(주로 국제사회의) 시각에도 박 대통령이 고집스레 견지해 온 문제다. 그런 만큼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지금 유연함과 단호함 사이에 서 있다. 외교안보 측면에서 유연함을 보여줬다면 위안부 문제에서 만큼은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 협력할 것은 전폭 협력하면서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원칙을 저버려선 안 된다. 그래야 취임 후 2년 반 만에 열리는 첫 한·일 정상회담의 명분도 선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