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 서쪽 끝 항구도시 드로아의 한 3층 집엔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2차 선교여행 중이던 바울은 이곳에서 일주일간 설교를 했고, 마을 주민들은 이 설교를 듣기 위해 밤마다 이 집에 모여들었습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어떤 이들은 창틀에 걸터앉아 바울의 말씀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창틀에 걸터앉아 위태롭게 말씀을 듣던 한 청년이 꾸벅꾸벅 졸다가 그만 3층 창밖으로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이 놀라 달려갔지만 그 청년은 이미 죽은 듯 쓰러진 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도 예배 시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주억거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오죽하면 저분들이 저렇게 피곤해하실까….’ 물론 목사의 설교가 지루한 탓이 크겠지만, 아마 더 큰 이유는 전날의 피곤이 여전히 눈꺼풀 위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들은 전날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힘들게 일하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했을 것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쁜 청년들도 있겠죠. 일주일을 고생한 뒤 주일 하루 정도는 집에서 쉬고 싶은데 아침부터 서둘러 교회에 나와 앉아 있으니 그 피곤이 오죽하겠습니까.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3층에서 떨어진 청년의 이름은 유두고입니다. 많은 성경 전문가들은 유두고가 하층민이나 노예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온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가 일을 끝마치고 밤늦게 바울의 설교를 들으려고 창틀에 걸터앉아 있던 청년 유두고의 모습은 취업 준비를 하거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허덕이며 사는 오늘날 청년들의 모습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바울은 3층에서 떨어져 죽은 듯 엎어진 청년을 끌어안고 이야기했습니다. “떠들지 마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고된 세상살이를 하다가 교회에 와서 힘없이 앉아 있는 성도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저 지친 어깨는 어디에서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청년 유두고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오늘날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은 어디에서 생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길과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의미 없어 보이는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삶의 의미를 찾고 꿈을 꾸는 ‘영원한 생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도 예배 시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계신가요. 당신에게 찾아오신 우리 예수님은 왜 설교에 집중하지 못하고 졸고 있느냐고 책망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의 힘들었던 어제를 위로하고 다가올 또 한 주간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분입니다. 졸고 있는 당신의 꿈속에서라도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위로로 힘입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심재훈 목사(문산드림교회)
[오늘의 설교] 예배 시간에 졸고 있는 당신에게
입력 2015-10-25 1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