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다윗왕의 恥部는 왜 기록되었을까

입력 2015-10-25 18:08 수정 2015-10-26 07:24

아주 옛날 외모와 지략을 갖춘 한 임금이 있었다. 신망도 두텁고 명성도 높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전쟁터에 내보낸 신하의 아내를 탐해 명성을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 임금은 자신으로 인한 여인의 임신 소식을 접하자 여인의 남편을 부랴부랴 전선에서 불러들인다. 허물을 덮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여인의 남편은 동료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자기만 아내와 편하게 지낼 수 없다면서 집에서 자기를 거부한다. 당황한 임금은 전선 사령관을 향해 전투가 가장 치열한 곳으로 여인의 남편을 보내 적의 화살에 죽게 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결국 그 남편은 전사했고, 이어 임금은 여인을 슬그머니 궁으로 불러들여 아내로 삼았다.

부하의 아내를 탐했으며 그 죄를 덮으려고 충성스러운 신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비열하고 욕심 많은 이 임금은 바로 다윗왕이다. 구약성서 시편의 주요 저자로도 잘 알려진 이스라엘 왕국의 2대 왕이다. 물론 그 일이 있은 후 다윗왕은 예언자 나단의 엄중한 탄핵을 받고 잘못을 크게 뉘우치며 눈물로 회개했다. 태어난 아이도 죽고 만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악행마저 지워지지는 않았다.

다윗왕의 치부(恥部, 삼하 11∼12장)를 볼 때마다 의문이 든다. 예수의 조상 다윗 가문의 중심인물인 다윗의 치부를 성서는 대체 왜 그리 세세하게 기록했을까. 구속사(救贖史)의 관점에서 그의 타락과 회개가 후대에 두루 전승되도록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일까.

중요한 것은 위대한 다윗왕의 치부가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든, 누구보다 깊은 믿음을 갖춘 지도자였든 관계없이 성서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흔히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필법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그렇듯 성서는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서인 구약성서 열왕기는 영광보다 오욕의 기록으로 넘치고 이어지는 예언서들은 이민족에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사회의 문란과 참담함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신약성서에서도 이러한 입장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그 기록들에는 구속사적 희망이 면면히 흐른다. 그건 바로 자신감이지 싶다.

거꾸로 부끄러운 역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감이 결여돼 있거나 미래 비전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보수우익들의 자학사관(自虐史觀) 비판 논리다. 보수우익들은 패전 이후 일본의 주류 역사학계를 향해 자학사관에 빠졌다고 목청을 높여 왔다. 자기 나라 역사를 자랑스러워해도 모자랄 판에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비판만 하는 것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아베 신조 총리도 같은 입장이다.

부끄러움이 반성과 회개로 이어지지 못할 때 흔히 과거를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사태가 빚어진다. 일본 보수우익들이 침략사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에 인색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에서도 조국의 과거 치부를 직시하고 진심으로 고백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찾아내려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보수우익들은 그들을 되레 자학사관이라며 핍박하고 있다.

요즘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다. 논란의 핵심은 친일과 독재 문제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로 모아질 터다. 여기에 옳고 그름을 떠나 꼭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온갖 풍상과 오욕까지도 견디고 선 게 오늘의 대한민국이며, 한두 가지 흠집을 더 강조하든 덮든 그 정도에 흔들릴 대한민국은 이미 아니라는 사실이다. 논쟁에 나선 이들을 비롯해 이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다윗왕의 부끄러운 역사를 곱씹어봤으면 한다.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