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세종대왕은 어떻게?

입력 2015-10-25 18:18

시대로 보든 인물로 보든 세종대왕은 놀랍다. 우리 문자를 창조하겠다는 놀라운 상상력과 창조해낸 실천력 하나만으로도 그 어떤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런데 모든 국정 곳곳에서 세종의 역량은 빛난다. 법제, 사회, 농업, 예술, 과학, 교육, 외교, 국방 그 어느 하나 빠진 데가 없다. 특히 인재 발굴과 등용에 있어서는 발군이다. 어떻게 한 시대에 그렇게 뛰어난 인재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신기할 정도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인물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일까. 왕업에 대한 깊은 이해 덕분일까. 왕권이 확고했기 때문일까. ‘준비된 군주’이고 ‘공부하는 왕’이었기 때문일까. 군주로서의 윤리의식과 목적의식이 뛰어나서일까. 요즘 말로 하자면, 그는 ‘타고난 리더십, 훈련된 리더십, 성장하는 리더십’이 아우러진 탁월한 리더이다.

궁금한 점은 있다. 세종은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전혀 없었을까.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나 ‘대왕 세종’에서 표현되었듯 세종은 부친 태종의 무력적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이 적잖았을 것이고, 두 형을 제치고 왕권을 계승했다는 것에 대해서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게 조선 창건 후 겨우 26년 만이다. 아무리 고려 왕조가 거악의 늪에 빠졌고 유학자 맹자도 필요하다고 한 ‘역성혁명’이라는 말을 붙인다 하더라도 할아버지 이성계의 조선 창건은 엄연한 군부 쿠데타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버지 방원의 폭력적 왕위 찬탈 과정에는 수없는 사람들의 피가 철철 흘렀다.

세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성군은 아니었던 것이다. 세종의 개인적 트라우마는 오히려 그를 내면적으로 더욱 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어린 충녕대군은 부르짖었다. “저는 아바마마와 같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저의 조선을 만들겠습니다.” 과거의 문제를 냉철하게 응시하며 새로움을 추구했던 세종은 그렇게 자신의 과제를 만들고 실천해냈던 것이다. 세종은 언제나 미래적 인물이다.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