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갔다 와. 아빠 빨리 와. 아빠 와.”
네 살배기 딸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같은 말을 세 번 했다. 구상연(98)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둘째 딸 선옥(68)씨의 마지막 모습이다. 곧 다시 볼 줄 알았건만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65년이 지났다. 서른셋 젊었던 아버지는 10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됐다. 그는 이번 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1·2회 차를 통틀어 최고령자다.
구 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장연군이다. 6·25전쟁이 터진 지 석 달이 지난 1950년 9월 26일, 북한 당국은 “황해도 월장에 있는 광산에 간다. 오후 4시까지 월장항에 집결하라”는 소집 명령을 내렸다. 할아버지는 “그게 사실 인민군 모집이었던 건데, 당시 나는 몰랐다. 서른이 넘어 군대 갈 나이도 아니었으니…. 그렇게 딸과 헤어졌다”고 회상했다.
나흘 뒤 할아버지는 기차역에서 작은형의 배웅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떠나기 전 형에게 “시장에 가서 고추를 팔아다 (큰딸) 송자(71·북측에선 ‘송옥’으로 기록)에게 신발을 사다주라”고 마지막 부탁을 했다. 할아버지는 집결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북상해 오던 미군에 포로로 잡혀 거제수용소로 이송됐다. 그렇게 이산의 아픔은 시작됐다.
구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지난 3일 여행을 다녀왔다. 할아버지가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으로 떠났던 가족 여행이었다. 며칠 뒤 “이산가족 상봉단에 포함됐다”는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게 벌써 10년 전인 2005년. 딸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줄만 알았다.
할아버지는 남에서 얻은 두 아들 형서(42) 강서(40)씨와 함께 23일 이산가족 집결지인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 도착했다. 딸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꽃신을 품에 안았다. “(꽃신을) 짐에 넣어 부치면 언제 줄지 모르니 우리가 직접 주자”면서 한사코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65년 전 약속을 지키러 24일 아침 일찍 금강산으로 떠난다.
이석주(98) 할아버지도 구 할아버지와 함께 이번 상봉의 최고령자다. 이 할아버지도 6·25전쟁 때 북한의 징집영장을 받고 전쟁터로 끌려가던 중 유엔군의 폭격으로 혼란한 와중에 홀로 탈출했다. 남으로 내려온 할아버지는 이후 북에 있는 가족과 영영 소식이 끊겼다.
이 할아버지는 이번에 북에 남겨둔 아들 동욱(70)씨와 손자 용진(41)씨를 만난다. 아내 한동희 할머니는 1994년 7월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맏딸 금자(72)씨는 살아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상봉장에 나오지 못하고, 나머지 가족도 숨지거나 생사 확인이 안 됐다.
할아버지는 북의 아들과 손자에게 줄 양복 두 벌을 장만했다. 아들과 손자에게 양복 한 벌씩 맞춰주고 싶었다. 원래는 아들 옷만 사려다 며칠 전 손자 옷도 샀다. 65년 만에 만나는 아들이지만, 같은 혈육이니 몸집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할아버지 치수에 맞는 옷을 골랐다. 셔츠도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하늘색으로 준비했다. 손자에게는 흰 셔츠를 주기로 했다.
이번 2차 상봉에서는 고령자 비율이 1차보다 높다. 때문에 등록을 마친 고령자들은 건강 검진을 받도록 안내했다. 김매순(80) 할머니는 의료진이 방북을 만류했으나 “업혀서라도 가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아 이튿날까지 경과를 지켜본 뒤 방북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조성은 기자, 속초=공동취재단 jse130801@kmib.co.kr
“내 혈육인데… 아들 치수 몰라 내 치수로 맞췄죠”
입력 2015-10-23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