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가 키워주던 국내 스포츠산업 관련 인사들이 국고보조금 비리로 잇따라 입건되고 있다. 이들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스포츠산업기술 연구·개발(R&D) 지원사업자로 선정됐는데, 수억원대 R&D 지원금을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편파판정·성폭력·입시비리·조직사유화 등 ‘스포츠 4대악’으로 몸살을 앓는 체육계에 새로 ‘R&D 지원금 비리’가 추가된 모양새다.
현재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인사들은 사단법인을 만들어 서로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문체부에 각종 건의사항을 전달하고 정부가 이를 적극 반영했다는 점, 뒤이어 R&D 지원금을 대거 따냈다는 점은 정부기관과의 유착 의혹마저 일게 한다. 검찰은 스포츠업계 대표들을 상대로 정관계 로비 여부를 따져 묻고 있다.
불만 있던 그들, 받아주던 정부
23일 현재까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가 체육계 R&D 지원금 비리로 수사한 업체는 골프용품 제조업체 M사, 스포츠의류 제조업체 K사, 소프트웨어업체 D사 등이다. 유용 혐의가 포착된 M사 전모(51) 대표는 이달 초 재판에 넘겨졌다. K사 이모(56) 대표는 최근 구속됐다. D사의 경우 지난 21일 서울 금천구에 있는 지사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들 업체는 이명박정부 시절 문체부와 활발하게 소통했고, 큰 지원금이 따르는 연구용역을 진행해 왔다. 2011년 4월에는 국내 스포츠업계 대표 격으로 장관 간담회에 참석해 첨단 스포츠용품 개발을 위한 R&D 지원 필요성을 강변하기도 했다. 전 대표는 이때 “외국 귀빈이 방문할 때 스포츠산업 연계 선물을 하자” “TV프로그램에 국내 브랜드의 노출 기회를 부여해 달라”는 노골적인 건의도 했다.
이들은 2012년부터 문체부 산하 국민체육진흥공단을 통해 각종 스포츠 연구과제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문체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다”며 2012년 11월 이 대표에게 ‘스키 및 보드의 스포츠과학적 하이브리드 구조재 적용 기술’ 과제를 맡겼다. 이 대표는 해당 과제를 셋으로 쪼개 근로복지공단 재활연구소, 강원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추진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억원의 지원금을 용도에 반해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 대표는 2012년 7월 ‘비거리 향상을 위한 골프샤프트 개발’ 과제를 맡았다. 그는 신기술 개발 목적으로 지급된 R&D 지원금 중 9억여원을 마음대로 쓴 혐의가 적발됐다. D사는 같은 시기 ‘물리모델기반 실감형 동계스포츠 훈련·체감 시스템 융합기술’ 과제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이후 연구실적은 미진하고 지원금은 유용됐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 과제들은 스포츠업계 자체적으로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파악한 ‘자유과제’가 아니라 정부가 상세 제안요청서(RFP)를 제시한 ‘지정과제’였다.
지난 정권 인사 겨냥한 수사?
검찰은 R&D 지원금 비리가 체육계 특유의 인맥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문체부에 목소리를 높이고 거액 지원금도 받던 이들 업체 대표는 모두 H사단법인의 부회장이다. 이 사단법인은 인접 학문과의 연계성을 강조한 기술포럼 형태의 모임이다. 스포츠업계뿐 아니라 D사와 같은 소프트웨어 제조·판매업체, 유수의 대학 산학협력단도 포함돼 있다.
부회장만 12명인 이 사단법인의 명예회장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 출신인 이모 전 새누리당 의원이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선거참모를 지낸 이력이 있다. 체육공단 국정감사에서 ‘보은인사’ 논란이 인 바 있다. R&D 지원금 비리 수사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체육계에서는 이번 수사가 지난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한다.
검찰은 구속자들을 상대로 유용된 자금의 용처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스포츠업계에서 횡령된 보조금이 로비자금이 돼 거꾸로 되돌아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체육공단은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된 뒤 2012년 당시의 R&D 지원금 현황을 면밀히 재점검하는 눈치다.
지난달 체육공단은 2012년 7월부터 영상추적기술 관련 과제를 수행해 온 T사 대표이사에게 연구개발비 재정산 결과를 통보하고 잔액 반납을 요청했다.
이경원 나성원 기자
neosarim@kmib.co.kr
정부와 끈끈하던 스포츠업계, 나랏돈 빼먹어
입력 2015-10-23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