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22일 ‘5자 회동’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방 주장만 오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대통령의 국회 시정 연설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합의 도출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회동 후 “싸우는 게 안 만나는 것보다 낫다”고 애써 의미를 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양측은 “‘생각이 정말 다르구나’라는 것을 확인한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고 평가하며 ‘상대 탓’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 지도자들의 회동이 경쟁적으로 상대의 말이나 끊는 언쟁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선 양측의 전략이 애초부터 결렬 상황에 맞춰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첨예한 의제를 두고 어차피 상대를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면 하고 싶은 얘기라도 모두 하겠다는 전략이 충돌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이 전략이 지지층을 결집하고 향후 여론전을 펴는 데 있어서도 훨씬 득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나쁜 합의보다 좋은 결렬을 택하겠다”는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의 회동 전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당내 입지가 불안한 여야 대표의 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23일 “여야 대표가 역사 교과서 강성 대결을 벌인 이면에는 복잡한 당내 관계가 배경에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친박(친박근혜)계와 공천 룰 전쟁을 최대한 늦추고 박근혜 대통령과 관계 개선이 필요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신당 창당과 비주류의 공세를 무마하기 위해 여권과 확실히 각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공학적인 측면보다 소신이 작용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과거 ‘사학법 개정 반대’ ‘세종시법 개정 반대’ 때와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이 이번 역사 교과서 문제도 정략적 접근이 아닌 소신을 바탕으로 한 정공법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역시 ‘대통령의 진정성’을 강조한다.
‘정치쇼’로 끝났다는 혹평을 받고 있는 청와대 5자 회동 이후 ‘역사 전쟁’ 전선은 더 뚜렷해졌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똑똑히 확인한 여당 의원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단일대오’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 국정화 이슈를 내년 총선까지 이어가겠다는 심산이다. 다만 문 대표는 정기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거나 예산 심사를 거부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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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23 22:26